-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시 연동면 송용리 7-2
- 탐방로그
- 연동면 송용리 7-2 국내항일운동사적지 결성장씨 문중서당 육영재를 찾았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항일 애국지사의 길을 걸으신 대표적인 인물로는 장기민, 장혼진 선생이 있다. 교육의 힘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해낸 의미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연동면 송용리 7-2 국내항일운동사적지 결성장씨 문중서당 육영재를 찾았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항일 애국지사의 길을 걸으신 분으로 장기민, 장홍진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항일 애국지사의 길을 걸으신 분으로 장기민, 장홍진 선생이 대표적이다.
육영재(毓英齋)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 | 2012년 12월 31일 지정 | 연동면 송용리 7-1
① 육영재(毓英齋) ② 삼문(三門)
육영재는 결성 장씨 가문의 서당으로 '송동 서숙', '송남 서당' 등으로도 불린다. 약 400여 년 전인 선조 대에 장훈이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을 짓고 자손들을 가르쳤다고 하며, 조선 고종 13년1876)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921년에는 신식 학문을 교육하는 기성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1926년 연동 공립 보통학교가 세워진 후 폐교되었으나 광복 직후까지 서당계를 통해 육영재를 유지하며 한문 서당의 명맥을 이어갔다. 고종 13년(1876) 이후의 육영재의 모습이 '송남 서당 이건기'에 남아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 | 2012년 12월 31일 지정 | 연동면 송용리 7-1
① 육영재(毓英齋) ② 삼문(三門)
육영재는 결성 장씨 가문의 서당으로 '송동 서숙', '송남 서당' 등으로도 불린다. 약 400여 년 전인 선조 대에 장훈이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을 짓고 자손들을 가르쳤다고 하며, 조선 고종 13년1876)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921년에는 신식 학문을 교육하는 기성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1926년 연동 공립 보통학교가 세워진 후 폐교되었으나 광복 직후까지 서당계를 통해 육영재를 유지하며 한문 서당의 명맥을 이어갔다. 고종 13년(1876) 이후의 육영재의 모습이 '송남 서당 이건기'에 남아 있다.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고 담이 낮은 곳으로 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