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영흥리 98-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추자도 어민 대일항쟁 기념비
추자도 어민 대일항쟁 기념비
추자도어민 대일항쟁 기념비 건립 취지문
일제강점기 어족자원의 보물섬 "추자도어민"은 일제의 횡포, 수탈에 2차례 강력 저항하였다.
제1차 어민항쟁은 1926년 5월 14일 해조류(천조) 공동판매를 강요하는 어민조합에 항거 예초리 어민 700여 명이 집단으로 항쟁. 그 결과 21명이 검거, 김종만 징역 1년, 김학연.김후배 징역 8개월, 황명채 외 3명은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
추대엽, 「추자도명」, 1977 / 「동아일보」, 1926.5.25.
제2차 어민항쟁은 1932년 5월 추자도 거주 일본인 어민 사와다(澤田)가 삼치 유자망으로 추자도 어민 내수면 어장터를 침범, 추자도어민들이 총궐기하였던 사건으로 그 결과 박천석.원성채.김봉수.박병석 4명이 징역 3개월의 형을 받았다.
추대엽, 「추자도명」, 1977 / 「제민일보」, 1999.2.28.
보물섬 추자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일제강점기 추자도 어민의 숭고한 뜻을 기념비에 기록, 후세에 남긴다.
2018년 9월 일 글쓴이 현병찬 세운이 추자면주민참여예산위원회
일제강점기 어족자원의 보물섬 "추자도어민"은 일제의 횡포, 수탈에 2차례 강력 저항하였다.
제1차 어민항쟁은 1926년 5월 14일 해조류(천조) 공동판매를 강요하는 어민조합에 항거 예초리 어민 700여 명이 집단으로 항쟁. 그 결과 21명이 검거, 김종만 징역 1년, 김학연.김후배 징역 8개월, 황명채 외 3명은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
추대엽, 「추자도명」, 1977 / 「동아일보」, 1926.5.25.
제2차 어민항쟁은 1932년 5월 추자도 거주 일본인 어민 사와다(澤田)가 삼치 유자망으로 추자도 어민 내수면 어장터를 침범, 추자도어민들이 총궐기하였던 사건으로 그 결과 박천석.원성채.김봉수.박병석 4명이 징역 3개월의 형을 받았다.
추대엽, 「추자도명」, 1977 / 「제민일보」, 1999.2.28.
보물섬 추자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일제강점기 추자도 어민의 숭고한 뜻을 기념비에 기록, 후세에 남긴다.
2018년 9월 일 글쓴이 현병찬 세운이 추자면주민참여예산위원회
일제강점기 추자면 항일 인사
고이중(高二中) 신양리 / 고일주(高日柱) 대서리 / 고태욱(高泰旭) 대서리 / 김기형(金奇馨) 영흥리 / 김득수(金得守) 영흥리 / 김봉수(金奉守) 영흥리 / 김종만(金鍾萬) 묵리 / 김학련(金學連) 묵리 / 김후배(金厚培) 묵리 / 박병석(朴炳碩) 영흥리 / 박복순(朴福順) 대서리 / 박천석(朴千石) 대서리 / 오사수(吳士秀) 예초리 / 원용덕(元容德) 대서리 / 원용혁(元容赫) 대서리 / 원일개(元一凱) / 이기동(李琪同) 신양리 / 이사문(李仕文) 영흥리 / 조재오(趙在五) 예초리 / 추남수(秋南洙) 영흥리 / 추정수(秋丁洙) 대서리 / 황명채(黃明采) 신양리
글쓴이 현병찬 / 참고문헌: 제주도지(06년 5월)
고이중(高二中) 신양리 / 고일주(高日柱) 대서리 / 고태욱(高泰旭) 대서리 / 김기형(金奇馨) 영흥리 / 김득수(金得守) 영흥리 / 김봉수(金奉守) 영흥리 / 김종만(金鍾萬) 묵리 / 김학련(金學連) 묵리 / 김후배(金厚培) 묵리 / 박병석(朴炳碩) 영흥리 / 박복순(朴福順) 대서리 / 박천석(朴千石) 대서리 / 오사수(吳士秀) 예초리 / 원용덕(元容德) 대서리 / 원용혁(元容赫) 대서리 / 원일개(元一凱) / 이기동(李琪同) 신양리 / 이사문(李仕文) 영흥리 / 조재오(趙在五) 예초리 / 추남수(秋南洙) 영흥리 / 추정수(秋丁洙) 대서리 / 황명채(黃明采) 신양리
글쓴이 현병찬 / 참고문헌: 제주도지(06년 5월)
앞쪽 취지문에는 김학연으로 되어있고, 뒷쪽에는 김학련(金學連)으로 되어있다.
하추자도를 찾아왔다.
신양항 여객선 대합실
버스종점이 있는 예초리
풀도 예의를 갖추는 마을, 예초리(禮草里)
예초리는 추자도의 동북단에 위치한 어촌마을로 마을 어귀에는 수호신인 엄바위와 억발장사가 있다. 이 마을에는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가 두 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마을 어부 오씨가 거두워 키웠다. 그 아이가 황경한으로 예초리 황씨의 입도조이고, 현재 예초리 산 12번지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김수한 추기경이 다녀가기도 한 곳으로 천주교 성지순례 111코스로 지정되어 매년 성지순례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쪽 우두섬 해돋이 광경 '우두일출(牛頭日出)'이 장관이다. 신대작지 푸른 바다에는 물고기떼가 춤을 추며 놀고 있는 듯한 '신대어유(神臺漁遊)'도 절경을 이룬다. 추석산(큰산)에는 소원길(1.2㎞)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절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절벽길 '예초리기정길'이 걷기 좋다. 또한 예초리는 추자 어민항일운동 1차 발상지 이다.
예초리는 추자도의 동북단에 위치한 어촌마을로 마을 어귀에는 수호신인 엄바위와 억발장사가 있다. 이 마을에는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가 두 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마을 어부 오씨가 거두워 키웠다. 그 아이가 황경한으로 예초리 황씨의 입도조이고, 현재 예초리 산 12번지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김수한 추기경이 다녀가기도 한 곳으로 천주교 성지순례 111코스로 지정되어 매년 성지순례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쪽 우두섬 해돋이 광경 '우두일출(牛頭日出)'이 장관이다. 신대작지 푸른 바다에는 물고기떼가 춤을 추며 놀고 있는 듯한 '신대어유(神臺漁遊)'도 절경을 이룬다. 추석산(큰산)에는 소원길(1.2㎞)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절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절벽길 '예초리기정길'이 걷기 좋다. 또한 예초리는 추자 어민항일운동 1차 발상지 이다.
하추자에서 동쪽 36㎞ 거리에 있는 넓이 138,701㎡의 무인도이다. 이 섬을 전라남도에서는 잊을만하면 안도군 소안면 소속 장수도(障水島)라고 영유권을 주장하여 왔다. 1919년 세부(細部) 측량시 예초리 산 121번지로 획정(劃定)되고 예초리 사람 김유홍(金裕洪) 명의로 등기, 또 1930년 일본인 다나카(田中斗)가 어장 확보차 매입 등기되고, 조국광복이 되자 국유지가 되었다. 1961년 추자교 교장 박철규(朴哲奎)와 학부모회장 박병술(朴炳술)은 흑송 1천본을 심었고, 1962년 다시 1천본을 심어 지상권을 선점, 황금어장의 수입으로 학교 발전기금을 조성, 1967년 제주세무서로부터 73,500원으로 매입 등기된 바 있다. 또 1993년 제주도교육청에서 교육재산으로 이전하려 한 바 있었다. 선각자 박교장은 1993년에 타계하고 1994년 3월 추자도민들은 「박철규선생 송덕비」를 학교 교정에 세워 그를 기렸다.
사수도(泗水島)는 추자면 예초리(禮草里) 산 121번지
사수도(泗水島)는 추자면 예초리(禮草里) 산 121번지
제주시 추자면 영흥리 98-2 충혼묘지 건너편 추자교 입구 추자도어민 대일항쟁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