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종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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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219-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여기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일본제국의 사슬에 희생된 젊은 영혼이 잠들고 계시다.
공은 1909년 기유 8월 25일 조천면 함덕리에서 출생하셨고 휘는 생종이신 바 본은 제주요 탐라개국왕 부을나의 후예인 중시조 진용부위 휘 언경의 19세손이시며 고의 휘는 만천이요 비 경주김씨 사이에 장남이시다. 취우 김해인 석찬의 장녀로서 자는 익재
요. 녀에 춘란이며 자부는 김문희이고 손남에 성철 영철 손녀는 애경 애선 애숙 애정이다.
공은 일찍이 애국지심이 투철하여 일본제국의 침략에 항거 1931년 1월 본도에서 김일준 동지와 제휴 독립 혁명가를 고창 궐기하고 서우의 애도비를 건립하려다 일경에 피검되어 동년 12월 8일 대구고법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굴할리 없는 공은 1933년 김일준과 함께 제주도농민회를 조직하고 향동회와 민풍진흥회에 가입 암약하는 일방 1934년 자택에서 지사 부병준과 공히 독서회를 조직 다수의 남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역사를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다시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주창. 조국을 찾으려는 신념은 일익충천하였으니 이 애국충정을 필설로써 다 하랴. 하나 시운이 미반임을 탓할까. 급기야는 조국광복을 목전에 두고
가족의 상면도 불허한 채 1936년 병자 6월 29일 목포 형무소에서 옥사로 공의 일생을 고하셨으니 오호라 애재여 시년이 28세이시다.
이에 1982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건국공로를 인정하여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고 민족의 영일에 지표로 삼고저 삼가 충혼의 명복을 빌며 이 비를 세웁니다.
서기 1984년 10월 일 북제주군수 근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219-1 대성식당 옆 순국선열 부생종의 묘를 찾아왔다.
殉國烈士 雪波 夫生鍾 之墓(순국열사 설파 부생종 지묘)
여기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일본제국의 사슬에 희생된 젊은 영혼이 잠들고 계시다. 공은 1909년 기유 8월 25일 조천면 함덕리에서 출생하셨고 휘는 생종이신 바 본은 제주요 탐라개국왕 부을나의 후예인 중시조 진용교위 휘 언경의 19세손이시며 고의 휘는 만천이요 비 경주김씨 사이에 장남이시다. 취우 김해인 석찬의 장녀 동택인바 자는 익재요 녀에 춘란이며 자부는 김문희이고 손은 성철
영철 손부 김복란 양화정이며 손녀는 애경 애선 재정 사위는 황용남 반기왕 남경필 김문찬이다. 외손녀 학일 병철 증손은 경록 경환 경준이며 증손녀 낸시이며 외증손은 황경훈 미리내 반성현 유진 남연정 정옥 철웅 김선호 태건이다.
공은 일찍이 애국지심이 투철하여 일본제국의 침략에 항거 1931년 1월 본도에서 동지들과 제휴 독립 혁명가를 고창 궐기하고 서우의 애도비를 건립하였다가 일경에 피검되어 동년 12월 8일 대구고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은 공은 1933년 제주도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향동회와 민풍진흥회에 입회 암약하는 일방 1934년 자택에서 지사 부병준과 공히 독서회를 조직 다수의 남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역사를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다시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주창. 조국을 찾으려는 신념은 일익충천하였으니 이 애국충정을 필설로써 다하랴. 하나 시운이 미반임을 탓할까. 급기야는 조국광복을 목전에 두고 가족의 상면도 불허한 채 1936년 병자 6월 29일 목포 형무소에서 옥사로 공의 일생을 고하셨나니
오호라 애재여 시년이 28세이시다. 이에 1982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건국공로를 인정하여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고 1991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시니 민족의 영일에 지표로 삼고저 삼가 충혼의 명복을 빌며 이 비를 세웁니다.

서기 2005년 12월 일 북제주군수 재건립
순국열사 부생종 지묘(殉國烈士 夫生鍾 之墓). 서기 1984년 10월에 건립되었던 묘비이다. 비문에 호 '설파'가 들어간 차이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