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137-1
- 탐방로그
-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137-1에 위치한 백응선 선생 묘소를 찾았다. 백응선 선생의 묘소에는 애국지사의 부친인 백수우 선생의 묘소도 함께 위치해 있었다. 백응선 지사의 묘비는 조천만세운동의 주동자이신 13분이 1921년에 세우신 매우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비석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왼쪽에는 백응선 애국지사의 부친이신 백수우 선생의 묘소이다.
백응선 애국지사가 심한 고문으로 출옥 후 6개월만에 서거하시고, 부친은 아들이 출옥 후 서거하셨다.
백응선 애국지사가 심한 고문으로 출옥 후 6개월만에 서거하시고, 부친은 아들이 출옥 후 서거하셨다.
오른쪽이 백응선 애국지사의 묘소였다. 4차례의 조천만세운동의 주동자 14분이 모두 체포되고, 지사께서는 6월형을 복역하고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6개월 후인 1920년 3월 28일 네 살 된 딸 하나를 남겨 두고 25살로 요절하였다.
學生 白修祐墓(학생 백수우묘)
公諱修祐字燦奎水原白氏也考諱
信哲妣全州李氏良植女公生干○
高宗壬申九月初六日卒干庚申三
月二十八日享年四十九壽干○來
境柯南薮火田坤坐原配金海金氏
哲元女生二男一女太善膺善女○
공의 휘는 수우 자는 찬규 수원백씨이다. 부친의 휘는 신철, 어머니는 전주이씨 양식의 녀이고, 공은 고종 임신9월 6올에 출생하시고, 경신3월 28일 향년 49세 졸하시다. 배 김해김씨와 사이에 2남1녀를 두시니 태선, 응선이시다.
信哲妣全州李氏良植女公生干○
高宗壬申九月初六日卒干庚申三
月二十八日享年四十九壽干○來
境柯南薮火田坤坐原配金海金氏
哲元女生二男一女太善膺善女○
공의 휘는 수우 자는 찬규 수원백씨이다. 부친의 휘는 신철, 어머니는 전주이씨 양식의 녀이고, 공은 고종 임신9월 6올에 출생하시고, 경신3월 28일 향년 49세 졸하시다. 배 김해김씨와 사이에 2남1녀를 두시니 태선, 응선이시다.
高承協太善生一男在新餘不書記
甲子十月 日不肖子太善謹記
甲子十月 日不肖子太善謹記
백응선 지사의 묘비는 조천만세운동의 주동자이신 13분이 1921년에 세우신 매우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비석이다.
故白膺善君之墓(고 백응선군지묘)
君諱膺善水原白氏燦奎子也丙申三月二十
七日生庚申三月二十八日卒附葬于橋來境
助仁納 考墓右坤坐原有一女己未春君與
同志十四人宣傳獨立被逮服役盡期出獄而
未半年奄作不歸客嗚呼哀哉銘曰嗚呼白君
天耶命耶同志十四方其八獄也捨身輕若鴻
毛及其出獄也誓心有如皎日嗚呼白君天耶
命耶同志十四雖不與之同死徇從孰不爲之
肝蝕腸裂嗚呼白君天耶命耶同志十四哭君
군의 휘는 응선 수원백씨이고 자는 찬규이다. 병신 3월 27일에 태어나서 경신3월 28일에 졸하여 교래리 조인납에 아버지 묘 우측 곤좌원에 부장하다. 외동딸을 남겼고 기미년 봄에 뜻을 같이한 14명 동지들은 그대와 같이 독립을 선포(宣傳獨立) 하다가 피체되어 만기 복역 후 출옥한지 반년 후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었다.
오호애재라 다음과 같이 명한다. 아아! 백군이여 천명이런가 운명이런가! 동지 14명은 바야흐로 투옥되었지만 조국독립을 위하여 내 몸 버리기를 홍모와 같이 가볍게 여겼는데 급기야 일편단심 맹세한 뜻은 출옥했을망정 옛날과 같도다. 동지들은 같이 죽지못하고 타는 간장을 여미고 창자를 찢기지 못함이여. 아! 동지 13명은 군의 영전에 통곡하며 그대의 넋을 다소나마 위로하고자 짧은 돌에 글을 새기노라. 단군 4255(1922년)년 임술 3월
七日生庚申三月二十八日卒附葬于橋來境
助仁納 考墓右坤坐原有一女己未春君與
同志十四人宣傳獨立被逮服役盡期出獄而
未半年奄作不歸客嗚呼哀哉銘曰嗚呼白君
天耶命耶同志十四方其八獄也捨身輕若鴻
毛及其出獄也誓心有如皎日嗚呼白君天耶
命耶同志十四雖不與之同死徇從孰不爲之
肝蝕腸裂嗚呼白君天耶命耶同志十四哭君
군의 휘는 응선 수원백씨이고 자는 찬규이다. 병신 3월 27일에 태어나서 경신3월 28일에 졸하여 교래리 조인납에 아버지 묘 우측 곤좌원에 부장하다. 외동딸을 남겼고 기미년 봄에 뜻을 같이한 14명 동지들은 그대와 같이 독립을 선포(宣傳獨立) 하다가 피체되어 만기 복역 후 출옥한지 반년 후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었다.
오호애재라 다음과 같이 명한다. 아아! 백군이여 천명이런가 운명이런가! 동지 14명은 바야흐로 투옥되었지만 조국독립을 위하여 내 몸 버리기를 홍모와 같이 가볍게 여겼는데 급기야 일편단심 맹세한 뜻은 출옥했을망정 옛날과 같도다. 동지들은 같이 죽지못하고 타는 간장을 여미고 창자를 찢기지 못함이여. 아! 동지 13명은 군의 영전에 통곡하며 그대의 넋을 다소나마 위로하고자 짧은 돌에 글을 새기노라. 단군 4255(1922년)년 임술 3월
靈而少一人慰君靈而銘短碣
檀君四千二百五十五年壬戌三月日
檀君四千二百五十五年壬戌三月日
金容燦 李文千 朴斗圭 金熙明 金章煥
金時殷 金慶熙 金弼遠 高載崙 謹竪
金時範 金年培 黃鎭式
김용찬 김시은 김시범
이문천 김경희 김년배
박두규 김필원 황진식
김의명 고재륜 김영배
김장환
근수
14인의 주동자 중에 이 비문을 쓰신 김시범 선생은 광복 후 4.3와중에 군경에 의해 부부가 같이 끌려가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서훈이 안되고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金時殷 金慶熙 金弼遠 高載崙 謹竪
金時範 金年培 黃鎭式
김용찬 김시은 김시범
이문천 김경희 김년배
박두규 김필원 황진식
김의명 고재륜 김영배
김장환
근수
14인의 주동자 중에 이 비문을 쓰신 김시범 선생은 광복 후 4.3와중에 군경에 의해 부부가 같이 끌려가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서훈이 안되고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산신제(토신제)를 지내기 위한 제단
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것을 산담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 산담의 규모를 보면 얼마의 정성으로 묘를 만든 것인지를 추측 가능하다고 한다.
지사 부자의 산담은 매우 크고 웅대한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이 산담의 규모를 보면 얼마의 정성으로 묘를 만든 것인지를 추측 가능하다고 한다.
지사 부자의 산담은 매우 크고 웅대한 것이라고 알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