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관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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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929
탐방로그
제주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929 제주해녀항쟁의 배후인물 ‘해녀의 노래’를 작사한 강관순의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오봉리 929는 내비게이션에 입력되지 않았고, 연평리 929로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내석이 세워져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海女(해녀)항일운동의 비밀 본거지 康寬順(강관순)의 生家(생가)
海女(해녀)항일운동의 비밀 본거지 康寬順(강관순)의 生家(생가)

이 연평리 929번지는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강관순의 부인 김유생(金有生)의 뒷바라지로 도내 거물 투사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최고 지휘자는 신재홍(申才弘)이었다. 우도의 해녀 대표는 강기평(康基平), 강순인(姜順仁), 강창순(康昌順) 여사 등에 의해 1931년 1월 세화장터의 항쟁에 참가했다. 그 후 전남경찰에 의해 우도에서 신재홍(申才弘) 등을 구인하려 하니 5백여 해녀가 몰려가 저지하자 세화주재소 주임 야마다치로(山田次郎)가 발포해 체포해 갔다. 이 무렵 도내 항일인사 1백명을, 또 구좌면 관내 우도인(牛島人) 13명, 세화인(細花人) 8명, 하도인(下道人) 9명, 종달인(終達人) 8명을 구속했다. 1933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신재홍(34) 5년, 강관순(26)과 김성오(24)는 2년 반 옥고를 치렀다. 강(康)은 제주농업학교를, 신(申)은 서울의 고보(高普)를, 김(金)은 만주의 동흥(東興)중학교를 졸업한 당대의 선각자였다. 더구나 강(康)은 강철(康哲)이란 필명으로 옥중에서 '海女의 노래'를 작사하여 저항을 이었다.
제주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 929 제주해녀항쟁의 배후인물 ‘해녀의 노래’를 작사한 강관순의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오봉리 929는 네비게이터에 입력되지 않았고, 연평리 929로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이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