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유배길 편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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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이동 518, 187-1
탐방로그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2012년 제주시 오라이동 518, 187-1에 면암 유배길을 개장하였다. 면암 유배길은 조선시대 선비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면암 최익현을 기리는 길이다. 최익현의 영향으로 제주도에 거주하던 유림들이 일본에 대항할 것을 약속하였던 조설대(朝雪臺)와 그가 들렀던 방선문 계곡을 중심으로 최익현의 정신을 집어가며 유배의 자취를 음미하는 길이다. 방선문은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는 뜻이며, 최익현이 유배 생활을 마친 후 한라산으로 올라가던 중 제일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일전에 유배기에 도착하였음을 보고하는 장계 편에 편지를 부쳤사온데, 이번 편지와 함께 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금부 일행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집 식구처럼 돌보고 보호해 주어, 그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포구로 내려가 순풍을 기다려 바다를 건너려 하고 있으니 눈물이 쏟아짐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원보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흥미를 붙일만한 일도 없어 한갓 근심만을 끼치고 있을 뿐이어서 부득이 금부 일행과 같이 떠나게 하였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도리어 애초에 보내는 것만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명년 봄 도로가 다소 마르게 되면 고을 사람 중에 한 번 왕래할 사람이 있겠지만 2천리 길울 왕래하는 일을 입으로만 부탁할 수도 없으니 이러한 무리만 아니면 될 것입니다.
서울 소식은 응당 전해질만한 것이 있을 듯하데 기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매우 답답합니다. 갖추지 못하고 아룁니다.

12월20일 아들 익현 추상서 채리 본댁에 부침
이번 초이틀 금부 일행이 떠나 별도로 향하였으므로 즉각 바다를 건널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예기치 않게 날마다 역풍이 불어 바다를 건널 기약이 까마득합니다. 북쪽에서 오는 배도 오지 못하고 있어서 피차간의 소식을 알 길이 없으니, 자못 미쳐서 병이 나려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곳 제주목사가 날마다 좋은 말로 달래주고 있으나 겉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저 혼자 물래 근심하고 탄식하며 잠자고 먹는 것이 편치 않습니다. 마침 풍문에 들으니, 구옥이 비록 방면은 되었으나 형벌을 과중하게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이지요? 임금깨 토산물을 진상하는 아전이 때마침 편지를 전해주고 또 답장을 받아오겠다고 하므로 대강 사유를 적어 올립니다. 다른 내용은 이전 편지에 들어 있으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갑술년 정월 8일 아들 익현 올림
탐라 전말 최익현의 제주 유배길

제주 유배길에서 나를 찾다
문연사와 조설대 안내판옆에 서있는 면암 최익현의 유배길 안내
문연사와 조설대 앞에는 2기의 비석이 서 있었다.
湖南居士 高公 斗鎭 之壇(호남거사 고공 두진 지단)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었다. 최익현 역시 편지를 많이 썼다. 유배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 그의 편지는 해배되어 돌아갈 때까지 끊기지 않는다. 편지 내용 대부분은 집안 걱정이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전하는 그의 편지는 가장으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조금 더 올라가서, 제주 제주시 오라동 187-1이다.
그래도 먼데를 구경했다 자랑하리
유배라는 절망 속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인내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 기나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해배의 명을 받는 순간, 다시 희망을 얻은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가벼웠을까.
제주에서의 유배생활. 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커다란 삶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곳 관아에 서울에서 온 죄인을 압송하는 관리가 두세명은 있을 텐데 아무런 동정이 없으니, 소식을 듣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달도 이미 열흘이 지났습니다. 삼가 살피지 못하였사온데, 내내 건강하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온지요? 그립고 그립습니다. 저는 날마다 목사의 관대한 위로를 받고 있으며, 섬 안의 풍속 또한 순박하여 모두들 돌보아 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의 가치도 없는 제가 어떻게 황량한 바다 외딴 지경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운수가 나빠서 삼읍의 농우가 전염병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다가 정원 보름 이후로 내리는 비가 장맛비가 되어 지금까지 개이지 않고 있어 보리와 밀이 썩어 문드러져 백성들이 울부짖고 있으니 이것이 매우 민망한 일입니다.
원보와 맹우가 지난달 20일 장성을 지날 때 부친 편지를 사흘 전에 받아 보니, 돈을 새로이 혁파하라는 명이 있어 지니고 있는 노잣돈이 쓸모없게 되어 인가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사정을 하고 투숙해야 할 형편이라고 합니다.
사방이 모두 서름서름한 처지에 어떻게 잘 지내는 지 알지 못하여 매우 근심이 됩니다. 다른 내용은 먼저 번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갑술년 2월 10일 아들 익현 올림
아버님께 아룁니다.
올해도 스무날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곳 추운 객지에서 어떻게 해야 마음이 상쾌해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목사와 막중의 여러 사람들이 이따금 술과 안주를 갖고 찾아와 위로해 주어 참으로 고맙게 받고는 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 몰염치한 일이고 또 마음도 편치 않아 한 집안 식구들과 그 맛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이 아이가 행장을 꾸린 지 벌써 오래되었으나 한 번의 순픙이 애태없어 아직도 이 곳에 지체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이 아이를 기다리느라 한 가지 근심을 더하시어 잠자리와 음식이 편치 않으실 것입니다. 이 웅담 1돈은 매우 좋은 것이라 하니, 시험삼아 써보시기 삼가 바랍니다.
새 책력 두 권을 부쳐 올리빈다. 갖추지 못합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올립니다.

갑술년 섣달 11일 아들 익현 드림
그저께 청양의 먼 친척이 바다를 건너 찾아 주어 몹시 기쁘던 차에 지난 정월 초아흐레 보내신 편지와 사촌 아우의 편지를 삼가 받았습니다. 해가 바뀔 무렵 감기때문에 기체후 불편하시다가 금방 회복하신 일과 애리 대소사가 두루 편안한 것과 또 장성과 이진에서 부친 편지가 모두 들어간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위로가 되고 또 기쁩니다.
이 앞서 보내신 두 통의 편지는 아직 받아 보지 못하였으니 저쪽에서 올만한 배가 없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후가 차츰 누그러져 장독이 사람을 괴롭히는데 다가 종전에 앓던 무릎 통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민망할 따름입니다. 언제 임금의 은혜를 입어 풀려날 지 어찌 감히 미리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포상을 받던 폄하를 당하든 임금의 은택이 아닌 것이 없으니, 그것은 생각 밖에 두어야 할 일일 뿐입니다.
또 이렇게 더 적어 알립니다. 갖추지 못하고 아룁니다.

갑술년 2월 20일 아들 익현 올림
채리본댁에 부침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 최익현

면암 최익현(1833~1906)은 조선말기의 역사적 격변을 앞장서서 부딪쳤던 대표 지식인이다. 올굳은 의병장이었으며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 했던 조선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버님께 아룁니다.
봄이 화창하여 따뜻해지고 맑은 기운이 펴지는 때에 살피지 못하였사온데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오며 가내가 한결같으며 큰 집, 작은 집도 모두 평온사신지요? 삼가 사모하는 마음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위장병이 다소 그쳐서 평소처럼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달 16일 배에 귀양을 풀어준다는 공문이 비로소 들어왔는데 반신반의하던 터에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한차계의 파란이 없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약간의 옷가지는 세탁을 하려하고 있으니, 세탁이 끝나면 즉시 배를 타기 위해 순풍을 기다리 곳으로 가서 다음달 안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러나 결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니 미리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임금께 바치는 특산물을 호송하는 관리가 먼저 출발할 듯 하므로 잠시 안부를 여쭙습니다. 지난번 아울러 동봉하여 올리고 갖추지 못합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을해년 3월 22일 아들 익현 올림
유배지에 도착하였음을 보고하는 장계를 올리는 아전과 금부 일행이 해가 바뀌기 전에 바다를 건넌다고 하였으므로, 각각 편지를 써서 차례차례 전해 올리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순풍이 없어 기한 내에 출발하지 못하고 있으니 피차간의 소식이 서로 막막할 뿐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밝은 때여서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자연히 잠자리도 편치 않고 입맛도 없습니다.
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니 애가 탑니다. 능주의 먼 친척 한 사람이 동 10냥을 싸들고 일부러 찾아 왔으니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원보와 먕아를 모두 이번 길에 따라서 바다를 건너가게 하였는데, 한 달 가까이 서로 지키고 있던 터여서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 소식은 어떤 내용이 전해진 것이 있으며, 어수선한 파란이 진정되고 위 하래 사람들은 서로 화합하고 있는지요? 갖추지 못합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갑술년 정월 2일 아들 익현 올림 제주 유배지에서 올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