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 행적비,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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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일동 387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한라산 관음사 개산조(漢拏山 觀音寺 開山祖) 해월당(海月堂) 봉려관(逢廬觀) 스님 행적비
봉려관 스님은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났다. 34세가 되는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은 인연으로 출가, 해월굴에서 6년 여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이에 제주불교를 중흥코자 서원, 1907년 12월 전남 대흥사를 찾아 믿기 어려운 기적을 행함으로써, 청봉화상을 계사로 유장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수계, 이듬해 1월 제주로 내려와 1908년 관음사를 창건, 개산조가 되었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스님을 초청, 정법홍포에 매진하였다. 또한 법정사 무오항일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36년 세수 71세 법납 37세로 입적하시니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조 억불정책으로 인한 200여 년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불교 중흥조요, 선각자요 애국지사이시다.
제주시 아라일동 387 관음사에 항일운동 지원을 하신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사적을 찾기 위해서 찾았다.
4.3피해사찰 - 관음사
관음사는 제주4.3사건 당시 무장대 도당 사령부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949년 1월 4일 토벌대는 한라산 공습을 실시하였고 이때부터 관음사 일대는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격전지가 되었다. 관음사를 접수한 토벌대는 1949년 2월 12일 관음사 대웅전을 비롯한 7채의 모든 전각에 불을 질러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주시 오이화 스님이 토벌대의 고문후유증으로 병사하였다.
해월굴(海月窟)
이 토굴은 본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스님이 1908년 10월부터 3년간 기도정진한 토굴이다. 안봉려관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의 선몽에 의하여 이곳을 제주불교 재건과 중흥을 위한 기본 도량으로 정하고 관음사 창건당시부터 3년간 이 토굴에서 기도정진하였다. 안봉려관 스님은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이곳관음사 도량이 앞으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성지(聖地)가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라산 관음사 개산조(漢拏山 觀音寺 開山祖) 해월당(海月堂) 봉려관(逢廬觀) 스님 행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