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이동 970-2
- 탐방로그
- 신성여학교는 멸실되었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향사당 내에 있다는 '최초의 신성 여학교터' 표지석은 찾을 수 없었다.
안내판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표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초의 晨星女學校터
제주도 최초의 여학교인 신성여학교(晨星女學校)터. 1902년 라크루(Lacrouts)신부에 의해 이곳에 세워졌다. 초대교장에 김아나다시아수녀가 취임하였으며 샤르뜨의 성바오로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초빙되어 제주의 여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떄의 여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7년뒤에 폐쇄되었다가 1946년 광복수 다시 개설되어 오늘의 신성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안내판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표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초의 晨星女學校터
제주도 최초의 여학교인 신성여학교(晨星女學校)터. 1902년 라크루(Lacrouts)신부에 의해 이곳에 세워졌다. 초대교장에 김아나다시아수녀가 취임하였으며 샤르뜨의 성바오로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초빙되어 제주의 여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떄의 여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7년뒤에 폐쇄되었다가 1946년 광복수 다시 개설되어 오늘의 신성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제주시 삼도이동 970-2 향사당 신성여학교터 표지석을 찾았다.
향사당 | 鄕社堂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6호
향사당은 고을의 어른들이 봄.가을로 2번의 모임을 갖고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며 당면과제나 민심의 동향에 대하여 논하던 곳이다. 향사당은 애초에 가락천 서쪽에 지었던 것을 1691년(숙종 17) 당시 판관 김동(金凍)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고, 1797년(정조 21) 방어사 유사모(柳師模)는 그 이름을 향사당이라 고쳐 불렀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에는 좌수의 처소로 쓰이다가 1909년 이후 신성여학교 교지로 이용되었으며, 1981년 다시 지었는데 건물이 길가에 붙어있어 동남향이던 길 방향을 동북향으로 바꾸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6호
향사당은 고을의 어른들이 봄.가을로 2번의 모임을 갖고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며 당면과제나 민심의 동향에 대하여 논하던 곳이다. 향사당은 애초에 가락천 서쪽에 지었던 것을 1691년(숙종 17) 당시 판관 김동(金凍)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고, 1797년(정조 21) 방어사 유사모(柳師模)는 그 이름을 향사당이라 고쳐 불렀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에는 좌수의 처소로 쓰이다가 1909년 이후 신성여학교 교지로 이용되었으며, 1981년 다시 지었는데 건물이 길가에 붙어있어 동남향이던 길 방향을 동북향으로 바꾸었다.
鄕社堂(향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