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만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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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1007
탐방로그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1007에 위치한 애국지사 고사만선생 추모비를 찾았다.

위치는 상기한 주소지지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오래 걸린다.

가족묘지에 묘소와 추모비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묘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지역에는 타 문중의 가족묘가 있으나 고사만 선생의 묘소는 찾을 수 없으며 현충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위치는 아는데, 그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오래 걸렸다.
저 멀리 보도자료 사진에서 보았던 추모비와 비슷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가족묘지에 추모비가 있다고 해서, 당연히 묘소가 같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묘소는 찾을 수가 없다.
추모비도 묘소들의 방향과 약간 다르게 배열이 되어있다.
고사만 선생의 이름으로 현충원 안장 여부를 검색해 보았지만 현충원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애국지사 고사만 선생 추모비
고사만 애국지사님은 1927년 혁명적 농민조합 결성을 위해 활동했다. 1930년 그는 문도배, 신재홍 등과 혁우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후 농민부. 청년부. 여성부를 편성하여 분야별로 게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유재산제도와 일본제국주의를 부인하는 선전에도 나섰다. 지사님은 혁우동맹을 해소시키고 농민단체와 해녀조합 결성을 주도하였다. 1931년 1월 제주에서 해녀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이 일어나 해녀어업조합에 반대하는 해녀들은 1천여 명의 시위대로 일경에 맞섰다. 이때 지사님은 해녀들의 항일운동 배후지도자로 지목되어 일경에 붙잡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이 지연되는 가운데 1년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지사님의 뜻을 기리고 우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하여 이에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비를 세웁니다.
지사님은 제주고씨 중시조 득종공의 21세손이시며 부 행양공과 모 백씨주행 사이에 1908년 10월 23일 구좌읍 종달리 1941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혼인은 김해김공 한석의 여식인 창계를 맞이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니 장남 찬영 차남 은광 삼남 영훈이며 여식은 봉자 영자이다. 손자는 승만 승우 승일 승규 승환 승철 대홍 지홍이다. 지사님은 1962년 10월 13일 서거하시다.
서기 2015년 월 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건립
추모비에 소개되어있는 고사만 애국지사님의 장남의 묘가 바로 옆에 있을 뿐이다.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1007 가족묘지 애국지사 고사만 선생 추모비를 찾았다.
하도리 한양조씨 가족공동묘지, 광산김씨 가족묘지 표석은 있어도, 고씨에 대한 표지석은 없다.
자동차 네비게이터가 아닌, 위성지도와 현위치를 비교하면서 가고 있는데, 차의 진입을 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