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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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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3.1운동기념탑 올라가면서 만났던 갈래길에 태인전적지 안내판이 있었다. 320m
성황산 정상이면 320m가 넘을것 같은데...
조금 올라가자 '태인배수지'에 의해 시멘트길은 닫혀있고, 우측으로 비켜 가는 길이 있었다.
태인전적지 250m, 팔각정 250m. 좀 이상한것이 지도상으로 직선거리가 600m가 넘는데....
조금 더 올라가자 다시 시멘트길을 만났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태인전적지
태인전적지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 맞서, 1894년 11월 27일(양 12.29)에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곳으로 전봉준 장군이 지휘한 최후 전투지이다. 우금티 전투 이후 전봉준장군은 논산과 전주를 거쳐 원평 구미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고, 이곳 태인에서 재기를 위한 항전을 준비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김문행(태인접주) 유공만 문형민 등 지휘부는 3천여 명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태인의 주산인 성황산 한가산 도리산 등 3개 산 9개 봉우리에 진을 쳤다. 오전 10시부터 약 10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동학농민군은 40~50명이 생포당하고 30~40명이 전사하였으며, 희룡포 15정, 조총 200여 정, 다수의 탄약과 죽창, 말 6필 등을 노획당하고, 고부와 남원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경군은 230명, 일본군은 40명이었다. 이곳 태인은 1894년 당시 태인현의 관아가 있던 중심지였으며, 동학농민군 김개남 총관령과 최경선 영솔장의 출생지이자 활동지였다.
자료 : 양호우 선봉일기, 순무사 정보첩, 봉남일기.
태인전적지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 맞서, 1894년 11월 27일(양 12.29)에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곳으로 전봉준 장군이 지휘한 최후 전투지이다. 우금티 전투 이후 전봉준장군은 논산과 전주를 거쳐 원평 구미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고, 이곳 태인에서 재기를 위한 항전을 준비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김문행(태인접주) 유공만 문형민 등 지휘부는 3천여 명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태인의 주산인 성황산 한가산 도리산 등 3개 산 9개 봉우리에 진을 쳤다. 오전 10시부터 약 10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동학농민군은 40~50명이 생포당하고 30~40명이 전사하였으며, 희룡포 15정, 조총 200여 정, 다수의 탄약과 죽창, 말 6필 등을 노획당하고, 고부와 남원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경군은 230명, 일본군은 40명이었다. 이곳 태인은 1894년 당시 태인현의 관아가 있던 중심지였으며, 동학농민군 김개남 총관령과 최경선 영솔장의 출생지이자 활동지였다.
자료 : 양호우 선봉일기, 순무사 정보첩, 봉남일기.
장군은 군대를 해산하고 치마바위 아래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장군 아니 됩니다. 어서 여길 떠나야 합니다.
저 칠보산과 입암산만 넘으면 바로 순창 피노리입니다.
잠시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합시다."
일행은 하염없이 흐르는 피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눈ㅂ라를 뚫고
절뚝거리며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가며 마지막 격전지를 떠났다.
- 장지홍 '동진강 메들리 II' -
"장군 아니 됩니다. 어서 여길 떠나야 합니다.
저 칠보산과 입암산만 넘으면 바로 순창 피노리입니다.
잠시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합시다."
일행은 하염없이 흐르는 피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눈ㅂ라를 뚫고
절뚝거리며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가며 마지막 격전지를 떠났다.
- 장지홍 '동진강 메들리 II' -
태인전적지
처음 시멘트 도로가 막힌 곳이 정수장이었다.
이곳에서 540m라고 되어있다.
이곳에서 540m라고 되어있다.
태인3.1운동기념탑 올라가면서 만났던 갈래길에 태인전적지 안내판이 있었다.
조금 올라가자 '태인배수지'에 의해 시멘트길은 닫혀있고, 우측으로 비켜 가는 길이 있었다.
태인전적지 250m, 팔각정 250m.
하지만 지도상으로 직선거리가 600m가 넘는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직선거리가 600m가 넘는다.
조금 더 올라가자 다시 시멘트길을 만났다.
다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팔각정 '성황정'
성황정
성황정의 봉립에 부치는 글
여기는 고향의 성산(聖山). 성황산의 정상이다. 북으로는 비옥하고 드넓은 호남평야를 이고 서쪽으로는 오늘도 유유히 동진강의 푸른 물이 서해로 흐른다. 동으로는 멀리 모악산과 상두산을 다독이며, 남으로는 회문산과 내장산이 크막하게 자리한 노령의 산줄기. 그 중심에서 방울 튀어 오른 성황산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선비문화의 중심지, 태인의 불멸의 영산이다. 우리들의 유년시절 '하늘과 바람과 사랑과 마움'을 일깨워 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어머니이시다.
달하 먼 발치로 내다보고 섰는 호곤한 꿈빛의 고향 어머니여!
이 나라의 가장 선하고 착한 백성들이 들꽃 처럼
모여서 사는 곳, 오오 태인이여!
3.1운동의 횃불을 밝힌 선열들의 거룩한 넉시 깃든 여기 성황능선에 우리들의 작은 열망과 정성을 한 데 모아 이 팔각정과 비를 세우나니 여기에 오르는 드높고 넓은 호연지기를 배워라.
여기는 고향의 성산(聖山). 성황산의 정상이다. 북으로는 비옥하고 드넓은 호남평야를 이고 서쪽으로는 오늘도 유유히 동진강의 푸른 물이 서해로 흐른다. 동으로는 멀리 모악산과 상두산을 다독이며, 남으로는 회문산과 내장산이 크막하게 자리한 노령의 산줄기. 그 중심에서 방울 튀어 오른 성황산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선비문화의 중심지, 태인의 불멸의 영산이다. 우리들의 유년시절 '하늘과 바람과 사랑과 마움'을 일깨워 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어머니이시다.
달하 먼 발치로 내다보고 섰는 호곤한 꿈빛의 고향 어머니여!
이 나라의 가장 선하고 착한 백성들이 들꽃 처럼
모여서 사는 곳, 오오 태인이여!
3.1운동의 횃불을 밝힌 선열들의 거룩한 넉시 깃든 여기 성황능선에 우리들의 작은 열망과 정성을 한 데 모아 이 팔각정과 비를 세우나니 여기에 오르는 드높고 넓은 호연지기를 배워라.
뒷면에는 이 비석 건립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있었다.
태인전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