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산73-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혁명군 영솔장 최경선지묘(東學農民革命軍 領率將 崔景善之墓) / 위치 :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31-1
1894년 부패한 정부와 외세의 침탈에 분연히 떨쳐 일어선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장군은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하였고, 최후를 같이 하였다. 인권과 민주, 민족자주와 평화를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은 구국항일전쟁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을 거쳐 민족통일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이에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읍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동학농민혁명군 영솔장 최경선 묘비 건립추진위원회(東學農民革命軍 領率將 崔景善 墓碑 建立推進委員會之)'를 결성하였고, 순국 101주년에 즈음하여 많은 분들의 뜻을 모아 선열들을 모시는 상징적 의미로 1996년 9월 8일 묘역을 정비하였다. 최경선 장군 묘를 중심으로 그 뒷면에 병풍처럼 11개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무명동학농민군의 영혼이 땅 속에서 그림자로 연결되고, 그림자가 다시 동학농민군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장군을 호위하는 형상을 뜻한다. 이러한 구조는 동학농민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역사이며, 오늘날 우리가 이어가야 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알린다.
1894년 부패한 정부와 외세의 침탈에 분연히 떨쳐 일어선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장군은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하였고, 최후를 같이 하였다. 인권과 민주, 민족자주와 평화를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은 구국항일전쟁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을 거쳐 민족통일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이에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읍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동학농민혁명군 영솔장 최경선 묘비 건립추진위원회(東學農民革命軍 領率將 崔景善 墓碑 建立推進委員會之)'를 결성하였고, 순국 101주년에 즈음하여 많은 분들의 뜻을 모아 선열들을 모시는 상징적 의미로 1996년 9월 8일 묘역을 정비하였다. 최경선 장군 묘를 중심으로 그 뒷면에 병풍처럼 11개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무명동학농민군의 영혼이 땅 속에서 그림자로 연결되고, 그림자가 다시 동학농민군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장군을 호위하는 형상을 뜻한다. 이러한 구조는 동학농민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역사이며, 오늘날 우리가 이어가야 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알린다.
領率將 全州崔公 景善之墓(영솔장 전주최공 경선지묘)
東學農民軍領率將崔景善之墓(동학농민군영솔장최경선지묘)
이천년 전 한 성현은 진리를 밝히다. 설흔 셋의 나이에 죽었고 부활하여 우리의 영원한 등불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최경선은 19세기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를 일으켜 싸우다 설흔 일곱의 나이에 죽임을 당했고 1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살아나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최장군은 1859년 11월 8일 태인에서 최성룡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전주최씨 문충공의 27대손이다. 일찌기 동학에 입교하여 30세경부터 전봉준 장군과 운명적으로 만나 그와 생사를 같
이천년 전 한 성현은 진리를 밝히다. 설흔 셋의 나이에 죽었고 부활하여 우리의 영원한 등불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최경선은 19세기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를 일으켜 싸우다 설흔 일곱의 나이에 죽임을 당했고 1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살아나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최장군은 1859년 11월 8일 태인에서 최성룡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전주최씨 문충공의 27대손이다. 일찌기 동학에 입교하여 30세경부터 전봉준 장군과 운명적으로 만나 그와 생사를 같
같이 하였다. 사발통문에 서명하고 갑오년 정월 고부봉기를 주도하였으며 그해 삼월 백산봉기때에 영솔장으로 추대되었다. 황토현 전투와 전주성을 점령할 때 큰 공을 세웠고 삼례2차 봉기때에는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해서 손화중과 함께 광주에 남아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공주에서 패하고 태인전투를 마지막으로 해산하자 나주성을 포위하고 있던 최장군은 갑오년 12월 동복 벽성리에서 관군과 싸우다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전봉준 손화중 장군과 함께 1895년 3월 30일 최후를 마쳤다. 장군은 부친이 큰 벼슬을 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억눌린 민중을 위해 의를 행하였으니 옛 성현의 뒤를 따랐다 할 것이다.
삼례봉기때 만삭이던 부인을 두고 출정하였더니 그때 낳은 아들 연식은 어려서 죽고 딸 둘은 이가춘과 박창규에 출가하였다. 평소 죽음을 각오한 최장군은 윗조고리 앞섶에 성명을 적은 천을 품고 다녀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약속하였다는데 처형당한 후 맏형 영대가 밤중에 산길로만 시신을 운구하여 고부 시동에 묻었다가 얼마 후에 이곳 축현리 조왕곡으로 모셨다. 그후 여섯째 아들 종식을 양자로 입적시키고 축현리 조왕곡 임야를 종식 명의로 매입하였으며 최장군의 손자 명언이 기적적으로 그 묘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삼례봉기때 만삭이던 부인을 두고 출정하였더니 그때 낳은 아들 연식은 어려서 죽고 딸 둘은 이가춘과 박창규에 출가하였다. 평소 죽음을 각오한 최장군은 윗조고리 앞섶에 성명을 적은 천을 품고 다녀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약속하였다는데 처형당한 후 맏형 영대가 밤중에 산길로만 시신을 운구하여 고부 시동에 묻었다가 얼마 후에 이곳 축현리 조왕곡으로 모셨다. 그후 여섯째 아들 종식을 양자로 입적시키고 축현리 조왕곡 임야를 종식 명의로 매입하였으며 최장군의 손자 명언이 기적적으로 그 묘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같이 하였다. 사발통문에 서명하고 갑오년 정월 고부봉기를 주도하였으며 그해 삼월 백산봉기때에 영솔장으로 추대되었다. 황토현 전투와 전주성을 점령할 때 큰 공을 세웠고 삼례2차 봉기때에는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해서 손화중과 함께 광주에 남아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공주에서 패하고 태인전투를 마지막으로 해산하자 나주성을 포위하고 있던 최장군은 갑오년 12월 동복 벽성리에서 관군과 싸우다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전봉준 손화중 장군과 함께 1895년 3월 30일 최후를 마쳤다. 장군은 부친이 큰 벼슬을 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억눌린 민중을 위해 의를 행하였으니 옛 성현의 뒤를 따랐다 할 것이다.
삼례봉기때 만삭이던 부인을 두고 출정하였더니 그때 낳은 아들 연식은 어려서 죽고 딸 둘은 이가춘과 박창규에 출가하였다. 평소 죽음을 각오한 최장군은 윗조고리 앞섶에 성명을 적은 천을 품고 다녀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약속하였다는데 처형당한 후 맏형 영대가 밤중에 산길로만 시신을 운구하여 고부 시동에 묻었다가 얼마 후에 이곳 축현리 조왕곡으로 모셨다. 그후 여섯째 아들 종식을 양자로 입적시키고 축현리 조왕곡 임야를 종식 명의로 매입하였으며 최장군의 손자 명언이 기적적으로 그 묘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삼례봉기때 만삭이던 부인을 두고 출정하였더니 그때 낳은 아들 연식은 어려서 죽고 딸 둘은 이가춘과 박창규에 출가하였다. 평소 죽음을 각오한 최장군은 윗조고리 앞섶에 성명을 적은 천을 품고 다녀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약속하였다는데 처형당한 후 맏형 영대가 밤중에 산길로만 시신을 운구하여 고부 시동에 묻었다가 얼마 후에 이곳 축현리 조왕곡으로 모셨다. 그후 여섯째 아들 종식을 양자로 입적시키고 축현리 조왕곡 임야를 종식 명의로 매입하였으며 최장군의 손자 명언이 기적적으로 그 묘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장군이 순국한지 10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는 전국 각지의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아 묘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많은 분들의 도움과 성금으로 세계사에 빛나는 농민혁명을 주도한 위대한 장군 최경선의 묘비를 세운다. 이로써 우리 자신은 이제껏 하늘을 똑바로 우러러 보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고 후손에게는 영광의 역사를 물려주고자 한다.
1996년 9월 8일 순국 101주년이 되는 해 광산 김현 글을 짓고 강진 김진돈 쓰다
1996년 9월 8일 순국 101주년이 되는 해 광산 김현 글을 짓고 강진 김진돈 쓰다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산73-4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지묘를 찾아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최경선 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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