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310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춘우정 김영상선생 순국추모비
오호라! 인간에게 목숨보다 더 중요함이 어디 있으리요, 그럼에도 나라를 위해 단식한 끝에 마침내 순절한 분이 계셨으니 바로 이 고장의 춘우당 김영상 선생이시다. 조선조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왜적이 우리나라를 강탈하려 소위 을사조약을 늑결하자 1906년 면암 최익현 돈헌 임병찬 선생이 무성서원에서 병오창의를 일으킬때 춘우정은 의병 800여명을 규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의병은 순창까지 진출하였으나 왜적 아닌 진위대와 맞서게 되니 맹주 최익현은 차마 동족상쟁은 할 수 없다고 해산하니 면암과 돈헌은 중과부적으로 적지 대마도에 감금되어 면암은 순절하니 춘우정은 비분강개하여 눈물과 슬픔으로 나날을 보냈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통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왜적은 소위 은사금으로 회유하려 하니 선생은 이를 단호히
물리쳤다. 그래도 왜적들은 계속 집요하게 핍박하니 선생의 이름 3자가 적혀있는 왜놈의 문서를 찢어 버렸다. 이로 인하여 왜병들은 선생의 발에 족쇄를 채워 헌병대로 강제 연행하고 온갖 만행을 다 하였다. 그래도 선생 계서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너희 주인 천황을 상대할지언정 네놈들은 상대하지 않을 터이니 물러 가라고 크게 호통을 쳤다. 이같이 강경하게 나오자 왜병들은 감옥으로 연행하였다. 만경강 사창나루를 건널 때 무이도가를 읊으시던 중 나룻배가 강 가운데에 이르자 분연히 깊은 물속에 몸을 던지니 왜놈들이 뛰어들어 선생을 끌어 배위에 올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선생은 왜병들을 크게 꾸짖으며 굴원을 만나려 가는데 어찌 하여 내 길을 막느냐며 다시 몸을 던지려 하였지만 이 또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1년 6월 5일 음력 5월 9 일 사시 감옥에서 장렬한 순절을 하시니 향년 76세요. 단식하신지 8일 만이었다. 손자 환각에게 맡겼던 의대에 남긴 절명사에는 "옛날 굴원의 정충은 멱라수에 몸을 던져 1기로 삼았는데 이제 나는 양구의 운을 당하였으니 사진으로 좇아가노라. 술 3배로 더불어 어복의 충혼을 위로하고 노중연의 도해를 따라 영원히 물가에 오르내 리고저" (신해년 5월 8일) 선생의 자는 승여요 춘우정은 호이며 본관은 도강이다. 고려 도성부원군 희조는 시조이며 충민공 회련은 조선 개국의 원종공신으로 한성좌윤이다. 춘우정은 1936년에 부 경흠과 모 나주 오 씨 장자로 태어나 익산 5현의 한 분으로 유명한 인산 소휘면의 고제 이셨다. 춘우정의 순절에 1927년에 유림들의 뜻을 기려 필양사를 건립하여 제향하고 1977년에는 각계 인사들이 선생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 하여 신창진에 춘우정 김영상 선생 투수순절추모비를 세웠다. 금년은 선생께서 순국하신지 100주년을 맞이하 여 선생의 충과 의로운 애국혼을 기려 후인들에게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11년 신묘 11월 16일 전북향토문화연구회 고문 양만정 찬 문학박사 미산 송하선 전면서
서기 2011년 신묘 11월 16일 전북향토문화연구회 고문 양만정 찬 문학박사 미산 송하선 전면서
애국지사 춘우정 김영상 선생 순국 100주년을 기리며 ... 이기반
님은 나라사랑 겨레 사랑의 우국충절이여 일편단심 나라 위해 갈고 닦은 학과 덕으로 선비와 학자들 교유하면서 오로지 겨레와 나라 위해 몸 바쳤으니 거룩하고 장하여라 칠보 선비의 고장 무성서원에서 일으킨 병오 창의에 칠십 노구로 가담하여 목숨 걸고 항일 투쟁하였다 임이여 장하고 장렬하여라 임은 또한 경술국치에 일제가 뿌린 소위 은사금을 과감히 물리쳤다 이 얼마나 당당한 민족적 기백인가 군산감옥으로 압송되던 중 만경강 사창나루에 투신하였으나 왜놈들에 의해 끌어 올리니 뜻을 이루지 못하여 천추에 한을 남기였네 님께서 주자의 무이 도가 3편을 읊으니 목청도 쩌렁 쩌렁하여라 의대에 쓴 절명사 마디 마디 사연을 어찌 잊으랴 항일운동 단식한 지 8일만에 감옥에서 순국하였으니 임이여, 슬프도다! 애화 맺힌 원한을 안고 만경강은 흐르는가. 올해는 순국하신지 1백주년 임의 거룩한 그 충혼 이 땅에 길이 두고 빛나리
님은 나라사랑 겨레 사랑의 우국충절이여 일편단심 나라 위해 갈고 닦은 학과 덕으로 선비와 학자들 교유하면서 오로지 겨레와 나라 위해 몸 바쳤으니 거룩하고 장하여라 칠보 선비의 고장 무성서원에서 일으킨 병오 창의에 칠십 노구로 가담하여 목숨 걸고 항일 투쟁하였다 임이여 장하고 장렬하여라 임은 또한 경술국치에 일제가 뿌린 소위 은사금을 과감히 물리쳤다 이 얼마나 당당한 민족적 기백인가 군산감옥으로 압송되던 중 만경강 사창나루에 투신하였으나 왜놈들에 의해 끌어 올리니 뜻을 이루지 못하여 천추에 한을 남기였네 님께서 주자의 무이 도가 3편을 읊으니 목청도 쩌렁 쩌렁하여라 의대에 쓴 절명사 마디 마디 사연을 어찌 잊으랴 항일운동 단식한 지 8일만에 감옥에서 순국하였으니 임이여, 슬프도다! 애화 맺힌 원한을 안고 만경강은 흐르는가. 올해는 순국하신지 1백주년 임의 거룩한 그 충혼 이 땅에 길이 두고 빛나리
무성서원 병오창의기적비가 있는 원촌마을을 찾았다.
이번 탐방의 목적지는 필양사이다.
원촌마을은 무성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명칭의 유래는 ‘서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부터 ‘원촌’이 되었다고 한다. 퇴계의 향약을 90년이나 앞선 고현향약, 고운 최치원이 풍월을 읊었다는 호남제일의 정자 피향정, 그리고 최치원과 신잠 선생 등 7현(賢)을 배향하는 무성서원, 무성리 삼층석탑, 석불입상 등이 있으며 최초의 가사작품 상춘곡과 불우헌 정극인 등 이 모두가 칠보를 중심으로 하는 이 고장 선비문화의 대표적인 유산들이다.
태산선비문화 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