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정호 송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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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617
탐방로그
시흥시 능곡동 617 영모재공원묘역 장현동 권희가 앞장 서 세운 낭정호 송덕비를 찾았다. 이 비석을 세우는데 주축이 되시는 분이 애국지사 권희 선생이라고 해서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昭和七年 十二月 日
(소화7년 12월 일)
1932년 12월 일
시흥시 능곡동 617 영모재공원묘역 장현동 권희가 앞장 서 세운 낭정호 송덕비를 찾았다.
이 비석을 세우는데 주축이 되시는 분이 애국지사 권희 선생이라고 해서 찾았다.
영모재(永慕齋)
조선 제15대 광해군의 장인인 문양부원군 류자신, 1541~1612의 재실이다. 영모재와 안채.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영모재의 경우, 대들보에 써넣은 상량문이 발견되어 안채는 조선 고종 6년(1869)에, 영모재는 고종 22년(1885)에 각각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간채의 경우, 직접적으로 상량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건물에 사용된 용재와 치목수법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안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안채는 시흥 관내에 현존하는 가옥으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확인되었다. 중심 건물인 영모재는 안쪽의 약간 높은 터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안채와 문간채는 '튼ㅁ자' 형식으로 이루어져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ㄱ자' 형의 안채와 'ㄴ자' 형의 문간채가 마주보고 있다. 안채는 잘 다듬은 초석과 기둥과 보, 도리 등의 치목수법, 부드러운 추녀 등의 면모를 볼 때, 경장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 전면의 기둥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여 8각주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유례가 드물다. 문간채는 대문간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반의 헛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앞쪽에 툇마루가 딸린 2칸의 방이 있다. 문간채 역시 초석이나 부재를 잘 다듬어 썼으며 추녀의 짜임도 건실하다. 영모재는 전면 각 칸마다 2짝씩 세살문을 설치하여 개방하였고, 양측면과 후면은 화방벽 위에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후면 중앙칸에는 2짝 판문을 달았다. 지붕은 팔작형식인데도 단순한 3량 구조를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원래 구조는 대들보 위에 종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올려 우진각 지붕으로 꾸몄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후대에 와서 측면의 충량 위에 외기종도리를 만들어서 팔작지붕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건축 연대와 구조적 독특성이 문화재적 가치로 인정되어 이미 향토유적 제4호(2001.1.31. 지정)로 지정되어 있던 「류자신 선생 묘 및 신도비」에 포함, 2004년 10월 16일에 추가 지정되었으며, 2008년 12월에 전면 복원.정비하였다.
문명석.조덕준 자선기념비 / 낭정호 송덕비 - 소재지 : 시흥시 능곡동 617 / 시대 : 1921년.1932년
이 곳에 자리하고 있는 「文公明錫 趙公德俊 慈善紀念碑(문공명석 조공덕준 자선기념비)」와 「浪公定鎬 頌德碑(낭공정호 송덕비)」는 능곡동 삼거리 마을 인근에서 위치하고 있던 비석으로 일제강점기 관내 주민들의 삶과 선행, 그리고 보은이라는 지역공동체 사람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잇는 자료이다.
건립된 해는 각각 1921년 자선기념비와 1932년 송덕비이며,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지역의 수혜자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위치가 옮겨졌다고 전해지고 잇어 원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관련 문헌자료 또한 찾아지지 않아 아쉬움을 더한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과림동의 「신안주씨 삼세적선비」1917와 시기 및 성격, 형태가 매우 유사하며, 특히 '자선기념비'의 경우 건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있다면 일제강점기 우리시 지역사 규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명석.조덕준 자선기념비]
恤貧應稅(휼빈응세) 義助建學(의조건학) 殘戶頌祝(잔호송축) 德潤庇屋(덕윤비옥)
빈민을 불쌍히 여겨 세금을 내어주고 연금을 부조하여 학교를 세우니 영세한 가호들이 칭송하여 덕망과 은택이 집을 감싸네
大正十年 五月 日 立(대정10년 5월 일 립) 1921년 5월 일 세움

[낭정호 송덕비]
唯我浪公(유아낭공) 春耕秋斂(춘경추렴) 今世活佛(금세활불) 補給周恤(보급주휼)
小作細民(소작세민) 萬口共頌(만구공송) 永保軀命(영보구명) 載此銘碑(재차명비)
오직 우리 낭공이 계셔서 봄에 밭 갈고 가을에 거두니 현세에 살아있는 부처처럼 뒷바라지 해주시고 두루 구휼하네
모든 소작 영세민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여 몸과 목숨을 영원히 보전하시기를 여기 비문에 싣노라
昭和七年 十二月 日(소화7년 12월 일) 1932년 12월 일
文公明錫 趙公德俊 慈善紀念碑(문공명석 조공덕준 자선기념비)

恤貧應稅(휼빈응세) 義助建學(의조건학) 빈민을 불쌍히 여겨 세금을 내어주고 연금을 부조하여 학교를 세우니
殘戶頌祝(잔호송축) 德潤庇屋(덕윤비옥) 영세한 가호들이 칭송하여 덕망과 은택이 집을 감싸네
文公明錫 趙公德俊 慈善紀念碑(문공명석 조공덕준 자선기념비)

恤貧應稅(휼빈응세) 義助建學(의조건학) 빈민을 불쌍히 여겨 세금을 내어주고 연금을 부조하여 학교를 세우니
殘戶頌祝(잔호송축) 德潤庇屋(덕윤비옥) 영세한 가호들이 칭송하여 덕망과 은택이 집을 감싸네
大正十年 五月 日 立
(대정10년 5월 일 립)
1921년 5월 일 세움
浪公定鎬 頌德碑(낭공정호 송덕비)

唯我浪公(유아낭공) 春耕秋斂(춘경추렴) 今世活佛(금세활불) 補給周恤(보급주휼)
小作細民(소작세민) 萬口共頌(만구공송) 永保軀命(영보구명) 載此銘碑(재차명비)
오직 우리 낭공이 계셔서 봄에 밭 갈고 가을에 거두니 현세에 살아있는 부처처럼 뒷바라지 해주시고 두루 구휼하네
모든 소작 영세민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여 몸과 목숨을 영원히 보전하시기를 여기 비문에 싣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