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 81-7
- 탐방로그
- 파리장서비는 여러 곳에 존재한다. 서울 장충단공원, 거창 침류정, 대구 월곡역사공원, 합천 일해공원에 이어서 5번째이다. 이 외에도 충남 홍성, 전북 정읍에도 파리장서비가 건립되어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 기념비 건립사기
한민족의 굴욕은 죽음보다 오히려 참기 어려우며 자유는 생명보다도 차라리 강한 것이다. 그러므로 1919년 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은 민족사 내지 세계사에 길이 끼친 불명의 녹음이다. 33인의 서명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됨과 함께 일제에 대한 전국적인 민족항쟁이 일어났던 한편 유림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인의 서명으로 일제 침략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글을 지어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가 다시 김규식으로 하여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하여 국제의 여론을 환기시킨 일이 있었던 것이야 말로 3.1운동사와 쌍벽을 이룬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함은 본시 유교의 본○이요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함은 그 또한 유교인의 신조이다. 역대의 의병운동에 항상 유학자들이 선봉에 섰고 특히 1895년 이래 구국운동에 피를 흘렸으며 이때에 운동이 진실 그 정신 그 신조의 발로이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선열들이 혹은 투옥 혹은 망명 그리고 또는 순국함으로써 천지와 더불어 우뚝한 민족정기를 한껏 발로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을 성취하여 국맥을 되살렸으니 우리 어찌 그 어른들의 업적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 137인 지사들은 유기적인 연결이 되지 못하여 3.1선언문의 서명에 불참되었다 하나 이 파리장서운동은 우리의 민족운동사에 있어서 음으로 양으로 이바지한 그 불멸의 위훈이 실로 지대했던 것이었다. 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금도 중부 영남 호서지방에서는 기념비가 건립되어 세인의 이목을 새롭게하고 있으며 호남지방의 파리장서 서명인, 10인의 선열들 명단이 있으나 아직껏 비 하나 건립되지 않았으니 이는 지방민의 조기치 못함이 아니겠는가. 회상컨데 충절의 고장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마을에서 서기 1849년 11월 11일 출생하신 유제 김양수 선생은 2001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을 추서받고 고향에 건립된 두암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서원조정에 김선생 추모비가 건립되어있다. 이에 본 시에서는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고 시비를 출연하여 파리장서기념비를 건립하여 대의의 정신과 구국이념을 자손만대에 전하여 영원한 번영을 기원한다.
단기 4342년 2월 일 정읍시장
한민족의 굴욕은 죽음보다 오히려 참기 어려우며 자유는 생명보다도 차라리 강한 것이다. 그러므로 1919년 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은 민족사 내지 세계사에 길이 끼친 불명의 녹음이다. 33인의 서명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됨과 함께 일제에 대한 전국적인 민족항쟁이 일어났던 한편 유림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인의 서명으로 일제 침략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글을 지어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가 다시 김규식으로 하여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하여 국제의 여론을 환기시킨 일이 있었던 것이야 말로 3.1운동사와 쌍벽을 이룬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함은 본시 유교의 본○이요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함은 그 또한 유교인의 신조이다. 역대의 의병운동에 항상 유학자들이 선봉에 섰고 특히 1895년 이래 구국운동에 피를 흘렸으며 이때에 운동이 진실 그 정신 그 신조의 발로이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선열들이 혹은 투옥 혹은 망명 그리고 또는 순국함으로써 천지와 더불어 우뚝한 민족정기를 한껏 발로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을 성취하여 국맥을 되살렸으니 우리 어찌 그 어른들의 업적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 137인 지사들은 유기적인 연결이 되지 못하여 3.1선언문의 서명에 불참되었다 하나 이 파리장서운동은 우리의 민족운동사에 있어서 음으로 양으로 이바지한 그 불멸의 위훈이 실로 지대했던 것이었다. 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금도 중부 영남 호서지방에서는 기념비가 건립되어 세인의 이목을 새롭게하고 있으며 호남지방의 파리장서 서명인, 10인의 선열들 명단이 있으나 아직껏 비 하나 건립되지 않았으니 이는 지방민의 조기치 못함이 아니겠는가. 회상컨데 충절의 고장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마을에서 서기 1849년 11월 11일 출생하신 유제 김양수 선생은 2001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을 추서받고 고향에 건립된 두암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서원조정에 김선생 추모비가 건립되어있다. 이에 본 시에서는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고 시비를 출연하여 파리장서기념비를 건립하여 대의의 정신과 구국이념을 자손만대에 전하여 영원한 번영을 기원한다.
단기 4342년 2월 일 정읍시장
파리장서비 건립 추진기
전북 정읍시 시기동 81-7 정읍사공원
저 위에서 보이는 파리장서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관리번호 : 51-1-50 국가보훈처지정현충시설
관리자 : 김용환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시기동 산9번지 정읍사공원
유림의 독립운동이란 일제가 우리나라를 힘으로 병합한지 10년째 기미년(1919) 삼월에
전국 유림대표 137인이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청원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전개한 1, 2차 독립운동을 일컫는다.
이 일을 주동한 김창숙, 유준근 선생을 비롯한 6명은 곽종석을 추대하여
그의 지휘 아래 왜경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가면서 서명작업을 완수하였고
다시 호서유림 김복한 등 17인과 호남유림 10인이 작성한 청원서를 단일화하여
곽종석이 지은 청원서를 지닌 김창숙은 3월 24일 출정하여 27일 상해에 도착하였고
거류 중인 지사들과 의논하여 당초 계획했던 파리행을 중지하고 이미 그곳에 체재 중이던
김규식을 통해 평화회의에 보내는 동시에 각국의 주중공사관, 중국정부와
국내의 각 기관 및 향교에 보내니 세계가 놀라고 일제가 두려워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이천만이 궐기하여 메아리치는 만세 소리가 강산을 뒤흔들었다.
십년만에 폭발한 민족의 울부짖음이 민족정기의 발로였기에
변절자 없는 사상으로 무장한 한국유림이 단합하여 광복의 기회를 맞았으니
호남지역 유림대표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양수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산교육장으로서 3.절, 광복절 행사 시
관련단체와 인사들에게 참석 및 참배기회를 제공하여
국가관 확립과 호국정신 유지계승,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관리번호 : 51-1-50 국가보훈처지정현충시설
관리자 : 김용환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시기동 산9번지 정읍사공원
유림의 독립운동이란 일제가 우리나라를 힘으로 병합한지 10년째 기미년(1919) 삼월에
전국 유림대표 137인이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청원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전개한 1, 2차 독립운동을 일컫는다.
이 일을 주동한 김창숙, 유준근 선생을 비롯한 6명은 곽종석을 추대하여
그의 지휘 아래 왜경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가면서 서명작업을 완수하였고
다시 호서유림 김복한 등 17인과 호남유림 10인이 작성한 청원서를 단일화하여
곽종석이 지은 청원서를 지닌 김창숙은 3월 24일 출정하여 27일 상해에 도착하였고
거류 중인 지사들과 의논하여 당초 계획했던 파리행을 중지하고 이미 그곳에 체재 중이던
김규식을 통해 평화회의에 보내는 동시에 각국의 주중공사관, 중국정부와
국내의 각 기관 및 향교에 보내니 세계가 놀라고 일제가 두려워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이천만이 궐기하여 메아리치는 만세 소리가 강산을 뒤흔들었다.
십년만에 폭발한 민족의 울부짖음이 민족정기의 발로였기에
변절자 없는 사상으로 무장한 한국유림이 단합하여 광복의 기회를 맞았으니
호남지역 유림대표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양수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산교육장으로서 3.절, 광복절 행사 시
관련단체와 인사들에게 참석 및 참배기회를 제공하여
국가관 확립과 호국정신 유지계승,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기념비 건립 취지문
사생취의는 곧 유교인의 신조요 지표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하여 정의의 기수가 되어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1919년(기미)을 당하여 국토는 이미 왜적에게 탄병되었고 치욕과 울분을 금치 못하여 날마다 죽을 땅만을 찾고 있던 한말 유교인들은 마침 그해 1월부터 5월까지 세계평화회의가 불국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개회됨을 듣고 이것은 곧 우리의 독립성을 세계만방에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며 그에 제출할 파리장서운동이 1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암동하기 시작하였다. 호영간 유림들은 과거 누적한 당파의식을 일소하고 광장의 한지리에서 전국유림대표 137인이 연명한 장서 일통을 작성하여 심산 김창숙씨로 하여금 파리에 파견키로 의결하니 곧 1919년 3월 23일이다. 심산 선생은 즉시 임무를 갖고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하였으나 의외에도 그곳 사정으로 인하여 이미 우리 대표로 파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규식씨에게 우송 제출케하고 선생은 상해에서 다시 각국어로 번역한 장서 수만 부를 본국 밑 열방에 배포하였다. 이로써 수천년 국민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나아가 한국의 독립사정과 왜적의 강도적 행위를 전세계에 폭로했던 것이다. 이때는 바로 3.1운동으로 인하여 왜적의 독아와 철제는 도처에 살상을 자행하였고 감시의 눈초리는 극도로 삼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색창연한 유교인들은 열혈과 의담으로써 적망을 뚫고 갖인 고난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형천의 불꽃이 해외만리에 연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렬무쌍한 의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기념하고 선열들의 고결한 정신을 숭모하고 선양하기 위하여 파리장서비를 제일 먼저 서울 장충단공원내(1973) 건립을 비롯하여 경남 밀양시 영남루역내(1992), 대구광역시 역시 근린공원내(1997), 경남 거창공원내(1997),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2006). 경남 합천군 일해공원내(2007)에 건립되어 있으나 호남지방에는 아직껏 건립되지 않았으니 이 지방유림들의 생각지 못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본 파리장서비건립추진위원은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읍유림의 중지를 모아 정읍시 시기동 산 9번지 초산 기슭 정읍사공원내 시립학생도서관 옆에 기념비를 건립하여 유림의 기본적 자세와 구국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애국충절의 산 교육장이 되기를 바란다.
단기 4342년 2월 일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건립 추진위원회
사생취의는 곧 유교인의 신조요 지표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하여 정의의 기수가 되어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1919년(기미)을 당하여 국토는 이미 왜적에게 탄병되었고 치욕과 울분을 금치 못하여 날마다 죽을 땅만을 찾고 있던 한말 유교인들은 마침 그해 1월부터 5월까지 세계평화회의가 불국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개회됨을 듣고 이것은 곧 우리의 독립성을 세계만방에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며 그에 제출할 파리장서운동이 1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암동하기 시작하였다. 호영간 유림들은 과거 누적한 당파의식을 일소하고 광장의 한지리에서 전국유림대표 137인이 연명한 장서 일통을 작성하여 심산 김창숙씨로 하여금 파리에 파견키로 의결하니 곧 1919년 3월 23일이다. 심산 선생은 즉시 임무를 갖고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하였으나 의외에도 그곳 사정으로 인하여 이미 우리 대표로 파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규식씨에게 우송 제출케하고 선생은 상해에서 다시 각국어로 번역한 장서 수만 부를 본국 밑 열방에 배포하였다. 이로써 수천년 국민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나아가 한국의 독립사정과 왜적의 강도적 행위를 전세계에 폭로했던 것이다. 이때는 바로 3.1운동으로 인하여 왜적의 독아와 철제는 도처에 살상을 자행하였고 감시의 눈초리는 극도로 삼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색창연한 유교인들은 열혈과 의담으로써 적망을 뚫고 갖인 고난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형천의 불꽃이 해외만리에 연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렬무쌍한 의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기념하고 선열들의 고결한 정신을 숭모하고 선양하기 위하여 파리장서비를 제일 먼저 서울 장충단공원내(1973) 건립을 비롯하여 경남 밀양시 영남루역내(1992), 대구광역시 역시 근린공원내(1997), 경남 거창공원내(1997),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2006). 경남 합천군 일해공원내(2007)에 건립되어 있으나 호남지방에는 아직껏 건립되지 않았으니 이 지방유림들의 생각지 못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본 파리장서비건립추진위원은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읍유림의 중지를 모아 정읍시 시기동 산 9번지 초산 기슭 정읍사공원내 시립학생도서관 옆에 기념비를 건립하여 유림의 기본적 자세와 구국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애국충절의 산 교육장이 되기를 바란다.
단기 4342년 2월 일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