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마정리 631
- 탐방로그
- 정읍시 북면 마정리 631에 위치한 최경선 장군 생가 터 안내판을 찾아가고 있다. 그 당시에는 사랑채, 서당,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정읍시 북면 마정리 631 최경선 장군 생가 터 안내판을 찾아가고 있다.
최경선 장군 생가터 / 위치 : 정읍시 북면 마정리 631번지(월천마을)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5대 지도자 중의 한 분인 최경선 장군의 생가터이다. 그 당시에는 사랑채, 서당,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최경선 장군은 전봉준과 함께 사발통문 거사계획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고부봉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백산대회 때 동학농민군 영솔장으로 추대되었다. 황토현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황룡전투를 거쳐 전주성을 점령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2차 봉기 때에는 일본군이 서남해로 내려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손화중 장군과 함께 광주에 남았다. 그러나 전봉준 부대가 공주 및 태안 등지에서 패하고, 정세가 불리하게 되자 나주성 포위를 풀고, 손화중 장군과 함께 광주에 입성한 뒤 12월 1일(음) 해산하였다.
그는 12월 3일(음) 관군에 체포당한 뒤 일본군에게 넘겨졌고, 서울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으며, 마침내 1895년 3월 30일(음)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성두환 등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향년 37세였다. 칠보면 축현리 조왕곡에 묘소가 있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5대 지도자 중의 한 분인 최경선 장군의 생가터이다. 그 당시에는 사랑채, 서당,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최경선 장군은 전봉준과 함께 사발통문 거사계획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고부봉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백산대회 때 동학농민군 영솔장으로 추대되었다. 황토현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황룡전투를 거쳐 전주성을 점령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2차 봉기 때에는 일본군이 서남해로 내려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손화중 장군과 함께 광주에 남았다. 그러나 전봉준 부대가 공주 및 태안 등지에서 패하고, 정세가 불리하게 되자 나주성 포위를 풀고, 손화중 장군과 함께 광주에 입성한 뒤 12월 1일(음) 해산하였다.
그는 12월 3일(음) 관군에 체포당한 뒤 일본군에게 넘겨졌고, 서울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으며, 마침내 1895년 3월 30일(음)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성두환 등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향년 37세였다. 칠보면 축현리 조왕곡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