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5
- 탐방로그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5에 위치한 전봉준 동상을 찾았다. 옆에는 구민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옆에 있는 구민사
황토현전적지 앞
사적 제295호 /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황토현 전적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곳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군은 1894년(고종 31) 1월에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조병갑을 응징했다. 그러나 사태를 진정시키러 온 정부 관리는 모든 잘못을 농민군에게 돌리며 그들을 탄압했다. 이에 수만 명의 농민군은 고부 북쪽의 백산에 집결하여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구한다는 기치 아래 전봉준을 대장으로 추대했다. 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새벽, 이 곳에 진을 치고 있던 관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날 이곳은 동학 농민군들이 남긴 정신과 함께 나라 사랑과 민주주의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
황토현 전적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곳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군은 1894년(고종 31) 1월에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조병갑을 응징했다. 그러나 사태를 진정시키러 온 정부 관리는 모든 잘못을 농민군에게 돌리며 그들을 탄압했다. 이에 수만 명의 농민군은 고부 북쪽의 백산에 집결하여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구한다는 기치 아래 전봉준을 대장으로 추대했다. 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새벽, 이 곳에 진을 치고 있던 관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날 이곳은 동학 농민군들이 남긴 정신과 함께 나라 사랑과 민주주의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
濟世門(제세문)
濟世門(제세문)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
제세안민과 왜이축멸을 기치로 창의한 갑오동학농민봉기는 반봉건 반침략의 농민전쟁으로서 한국근대사에서 찬연히 빛난다. 위대한 선각자 전봉준을 중심으로한 농민군은 동학의 조직과 힘을 통하여 왕조말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 외세를 구축하며 새로운 사화를 건설하려는 높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봉건사회의 해체와 민족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겨레와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자신을 불사른 농민들의 자주정신은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태동시켜 의병전쟁에로 그 명맥이 닿았고 뒷날 3.1운동으로 이어지는 항일구국투쟁의 큰 줄거리를 이루었으니 그 정신은 앞으로도 민족운동의 횃불로서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민족정기를 드높인 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전두환대통령의 유시로 큰 싸움터였던 이곳을 정화하고 비를 세운다.
제세안민과 왜이축멸을 기치로 창의한 갑오동학농민봉기는 반봉건 반침략의 농민전쟁으로서 한국근대사에서 찬연히 빛난다. 위대한 선각자 전봉준을 중심으로한 농민군은 동학의 조직과 힘을 통하여 왕조말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 외세를 구축하며 새로운 사화를 건설하려는 높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봉건사회의 해체와 민족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겨레와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자신을 불사른 농민들의 자주정신은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태동시켜 의병전쟁에로 그 명맥이 닿았고 뒷날 3.1운동으로 이어지는 항일구국투쟁의 큰 줄거리를 이루었으니 그 정신은 앞으로도 민족운동의 횃불로서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민족정기를 드높인 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전두환대통령의 유시로 큰 싸움터였던 이곳을 정화하고 비를 세운다.
輔國門(보국문)
輔國門(보국문)
全琫準先生像(전봉준선생 상)
全琫準先生像(전봉준선생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