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131-13
- 탐방로그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131-13 도학초등학교 앞 삼거리 농민군이 진을 쳤던 사시봉 안내판을 찾았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현) 도학초등학교에서 사시봉까지 흰옷을 입은 행렬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전해내려온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사시봉((謝矢峯)) ⇒ 2km
사시봉((謝矢峯)) ⇒ 2km
안내판에서 사시봉을 가르키는 방향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131-13 도학초등학교앞 삼거리 농민군 진을 쳤던 사시봉 안내판을 찾았다.
사시봉
사시봉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번지
이곳은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리적 조건으로 황토재의 관군과 대치하기 위하여 수천의 농민군이 집결한 사시봉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학혁명당시 (현) 도학초등학교에서 사시봉까지 흰옷을 입은 행렬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어 농민군의 진지가 확실하며 그 의미가 매우 크다.
1894년 4월 6일(음력) 농민군이 사시봉에 집결하자 백산으로 출동했던 전라감영 군은 농민군을 추격하였고 농민군은 해질 무렵 이곳 사시봉에 진을 치고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하였다. 전봉준장군을 선두로 농민군은 기습공격을 예측하여 진지를 비워 병력을 주위에 매복시키고 허수아바와 나뭇가지에 흰옷을 걸쳐 위장토록 하였다. 5월 7일 새벽 농민군을 과소평가한 감영군은 농민군 진지를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순간 구릉에 매복해있던 농민군은 삼면에서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도망치는 감영군을 추격하여 황토재의 본진을 역습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농민군의 진지이다.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번지
이곳은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리적 조건으로 황토재의 관군과 대치하기 위하여 수천의 농민군이 집결한 사시봉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학혁명당시 (현) 도학초등학교에서 사시봉까지 흰옷을 입은 행렬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어 농민군의 진지가 확실하며 그 의미가 매우 크다.
1894년 4월 6일(음력) 농민군이 사시봉에 집결하자 백산으로 출동했던 전라감영 군은 농민군을 추격하였고 농민군은 해질 무렵 이곳 사시봉에 진을 치고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하였다. 전봉준장군을 선두로 농민군은 기습공격을 예측하여 진지를 비워 병력을 주위에 매복시키고 허수아바와 나뭇가지에 흰옷을 걸쳐 위장토록 하였다. 5월 7일 새벽 농민군을 과소평가한 감영군은 농민군 진지를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순간 구릉에 매복해있던 농민군은 삼면에서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도망치는 감영군을 추격하여 황토재의 본진을 역습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농민군의 진지이다.
사시봉(謝矢峯)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번지
이곳은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리적 조건으로 황토재의 관군과 대치하기 위하여 수천의 농민군이 집결한 사시봉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학혁명당시 (현) 도학초등학교에서 사시봉까지 흰옷을 입은 행렬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어 농민군의 진지가 확실하며 그 의미가 매우 크다.
1894년 4월 6일(음력) 농민군이 사시봉에 집결하자 백산으로 출동했던 전라감영 군은 농민군을 추격하였고 농민군은 해질 무렵 이곳 사시봉에 진을 치고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하였다. 전봉준장군을 선두로 농민군은 기습공격을 예측하여 진지를 비워 병력을 주위에 매복시키고 허수아바와 나뭇가지에 흰옷을 걸쳐 위장토록 하였다. 5월 7일 새벽 농민군을 과소평가한 감영군은 농민군 진지를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순간 구릉에 매복해있던 농민군은 삼면에서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도망치는 감영군을 추격하여 황토재의 본진을 역습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농민군의 진지이다.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3번지
이곳은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리적 조건으로 황토재의 관군과 대치하기 위하여 수천의 농민군이 집결한 사시봉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학혁명당시 (현) 도학초등학교에서 사시봉까지 흰옷을 입은 행렬이 줄지어 서있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어 농민군의 진지가 확실하며 그 의미가 매우 크다.
1894년 4월 6일(음력) 농민군이 사시봉에 집결하자 백산으로 출동했던 전라감영 군은 농민군을 추격하였고 농민군은 해질 무렵 이곳 사시봉에 진을 치고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하였다. 전봉준장군을 선두로 농민군은 기습공격을 예측하여 진지를 비워 병력을 주위에 매복시키고 허수아바와 나뭇가지에 흰옷을 걸쳐 위장토록 하였다. 5월 7일 새벽 농민군을 과소평가한 감영군은 농민군 진지를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순간 구릉에 매복해있던 농민군은 삼면에서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도망치는 감영군을 추격하여 황토재의 본진을 역습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농민군의 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