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
- 탐방로그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군 우물을 찾았다. 동학농민혁명군 우물은 가정경로회관 바로 옆에 있었다.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혁명군 우물(東學革命軍井) /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번지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량이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고 한다.
1894년 4월 6일 ~ 7일(음력) 벌어진 황토현전투 이전, 여기에서 동쪽 방향의 사시봉에는 수천의 동학농민군이, 뒤편 황토재에는 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은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동학농민군에게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토현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우물은 가로 1m 세로 1m 정방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된 우물 받침대에 갑자 2월 일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우물은 1864년에 축조되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다는 증언을 뒷받침 한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했던 이 아물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며 역사교육의 장소로 가치가 높다.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량이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고 한다.
1894년 4월 6일 ~ 7일(음력) 벌어진 황토현전투 이전, 여기에서 동쪽 방향의 사시봉에는 수천의 동학농민군이, 뒤편 황토재에는 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은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동학농민군에게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토현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우물은 가로 1m 세로 1m 정방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된 우물 받침대에 갑자 2월 일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우물은 1864년에 축조되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다는 증언을 뒷받침 한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했던 이 아물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며 역사교육의 장소로 가치가 높다.
동학혁명군 우물(東學革命軍井) / 위치 :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번지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량이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고 한다.
1894년 4월 6일 ~ 7일(음력) 벌어진 황토현전투 이전, 여기에서 동쪽 방향의 사시봉에는 수천의 동학농민군이, 뒤편 황토재에는 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은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동학농민군에게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토현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우물은 가로 1m 세로 1m 정방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된 우물 받침대에 갑자 2월 일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우물은 1864년에 축조되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다는 증언을 뒷받침 한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했던 이 아물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며 역사교육의 장소로 가치가 높다.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량이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고 한다.
1894년 4월 6일 ~ 7일(음력) 벌어진 황토현전투 이전, 여기에서 동쪽 방향의 사시봉에는 수천의 동학농민군이, 뒤편 황토재에는 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은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동학농민군에게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토현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우물은 가로 1m 세로 1m 정방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된 우물 받침대에 갑자 2월 일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우물은 1864년에 축조되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다는 증언을 뒷받침 한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했던 이 아물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며 역사교육의 장소로 가치가 높다.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 동학농민혁명군 우물을 찾았다.
가정경로회관 바로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