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원 사당(오산사)

4

주소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32-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靑蓮齋 權先生 遺墟碑
(청련재 권선생 유허비)
靑蓮齋 權先生 遺墟碑
(청련재 권선생 유허비)
애국지사 청련재 권중원 선생(1860~1910)
애국지사 청련재 권중원 선생(1860~1910)
위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설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 대통령표창, 대통령 문재인, 2019 -
선생은 1907년에서 1910년 사이에 전북 진안에서 이석용이 거의할 때 교유하며, 협의 지원하고 이석용 의진에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이석용의 가족들을 은신시키는 등의 활동을 함. 이후 이석용에게 협조한 사실들이 발각되어 집과 문서가 전소되는 등 참화를 당하고 도피하던 중 사망함.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2019 -
선생은 1910년 여름, 향년 51세로 돌아가셨다. 대략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부터 분하고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때마침 호남의 의사 이석용이 창의의 계획과 전략을 선생에게 알려오자 절의로써 힘쓰고 이를 권장하면서 비밀리에 소통함이 많았다. 일이 드러나 왜병이 와서 선생의 집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 한천사고, 홍양 이환용, 1951 -
본래 재주와 의기가 있던 공은 망극한 시대를 만나 섬 오랑캐들이 잠식해 오자 항상 적개심을 품어오더니 정미년의 의로운 사건에 함께 참여하였다가 흉도들에게 무너뜨림을 당하여 집과 서적들을 모두 잃는 피해를 입으셨다. 밤낮으로 나라와 집안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시다가 병을 얻어 1910년에 세상을 뜨시니 나이 51세였다. - 추범 문원, 추범 권도용, 1955 -
이웃 고을에서 기병하자 공께서 그에 가담하신 결과 그 화가 미쳐 모든 것을 탕진해 버렸다. - 중재 선생 문집, 중재 김황, 1960 -
2020년 8월 15일 세우다
遺墟碑 移建 記念碑(유허비 이건 기념비)
遺墟碑 移建 記念碑(유허비 이건 기념비)
지난 다니4282년 己丑(기축) 春(춘)에 청련재 권선생의 門生(문생)과 數鄕(수향)의 유림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이 날로 湮沒(인몰)함을 개탄하야 義捐立契(의연입계)하고 다음해 庚寅(경인) 夏(하)에 선생의 유허비를 오산동 구정문등하에 건립하야 선생의 학행을 현각하야 후생으로 하여금 추모케 하였스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장소가 窮僻(궁벽)해지고 또한 비는 적고 글은 많아 字畫(자획)이 陵夷(능이)하야 다시 이건하지아니할수없스므로 僉君子(첨군자)께서 契會(계회)에 상의하야 이곳에 이건한바 현금 이천여만원이 소비되었으며 이 일에 협조하신 여러 僉君子(첨군자)에게 감사드리고 아래에 모든 僉君子(첨군자)의 芳名(방명)을 기록하나이다. 단기4322년 己巳(기사) 10월 27일 竪(수)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32-3 오메마을 청련재 권선생 사적공원 애국지사 청련재 권중원 선생의 사당 오산사를 찾았다.
청련재 권선생 사적공원
오산사(五山祠)
관리번호 : 52-1-46 / 관리자 : 권석희(권중원의 손) / 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18-1
오산사는 구한 말 호남지역의 유학자이며 애국지사였던 권중원(權重遠)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선생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이명은 진규(晉奎)이고 자는 평중(平仲), 호는 청련재(靑蓮齋)이다. 선생은 일찍이 서산 김흥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고 전국의 여러학자,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써 남다른 유학적 학문 세게를 이루었다. 선생은 외세의 국권침탈이 날로 격화되어 가자, 1885년부터 숙(塾)을 열어 나라의 부강이 곧 교육에 있다는 일념으로 인재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선생은 1905년경부터 1910년에 이르던 시기에 정재 이석용이 전북 진안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서로 교유하며 협의 지원하고 이석용 의진에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거사 직전에는 이석용의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은신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이석용과 의병에 협조한 여러 사실들이 발각되어 가옥과 전답 서책이 몰수되고 불태워지는 참화를 겪었으며 이후 도피하던 중에 1910년 51세로 순절하였다. 이에 정부는 2019년 8월 15일,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했던 선생의 애국충정과 희생정신을 높이 기리어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오산사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4일에 후학과 유림 후손들이 석채례를 개최하여 선생을 추모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문집으로는 청련재유집(靑蓮齋遺集)이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2019년 오산사를 현충시설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追遠門(추원문)
五山祠(오산사)

오산사(五山祠)
관리번호 : 52-1-46 / 관리자 : 권석희(권중원의 손) / 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18-1
오산사는 구한 말 호남지역의 유학자이며 애국지사였던 권중원(權重遠)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선생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이명은 진규(晉奎)이고 자는 평중(平仲), 호는 청련재(靑蓮齋)이다. 선생은 일찍이 서산 김흥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고 전국의 여러학자,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써 남다른 유학적 학문 세게를 이루었다. 선생은 외세의 국권침탈이 날로 격화되어 가자, 1885년부터 숙(塾)을 열어 나라의 부강이 곧 교육에 있다는 일념으로 인재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선생은 1905년경부터 1910년에 이르던 시기에 정재 이석용이 전북 진안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서로 교유하며 협의 지원하고 이석용 의진에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거사 직전에는 이석용의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은신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이석용과 의병에 협조한 여러 사실들이 발각되어 가옥과 전답 서책이 몰수되고 불태워지는 참화를 겪었으며 이후 도피하던 중에 1910년 51세로 순절하였다. 이에 정부는 2019년 8월 15일,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했던 선생의 애국충정과 희생정신을 높이 기리어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오산사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4일에 후학과 유림 후손들이 석채례를 개최하여 선생을 추모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문집으로는 청련재유집(靑蓮齋遺集)이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2019년 오산사를 현충시설로 지정.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