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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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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756 박준승 선생 추모공원 독립운동가 자암 박준승 선생 옥중 시비 동상을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밀양박씨 규정공파 중조1세 현자 후손 22세손 준승 선생은 서기 1866년 11월 24일 본촌에서 출생하여 서기 1891년 천도교에 입교하였으며 서기 1919년 2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시고 독립운동을 펼치시다가 서기 1921년 3월 24일 서거하셨으며 서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기에 이에 고장과 가문의 명예를 천추에 전하고저 유허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서기 1996년 4월 4일 유족대표 건립자 박동래 주치 주민 일동
서기 1996년 4월 4일 유족대표 건립자 박동래 주치 주민 일동
두번째가 찾았었던 복원 생가. 처음 탐방시에는 공사중이었었다.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추모비
독립운동가 박준승 朴準承 선생 일대기
자암 此菴 박준승 朴準承 선생(1866년~1927년)
임실이 낳은 위대한 선각자로 구국 항일 독립운동의 횃불을 높이든 박준승 朴準承 선생은 1866년 고종 3년 아버지 박호진 朴昊鎭 선생과 어머니 복씨 卜氏 사이에서 셋째로 임실군 청웅면 아랫배치(下舟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자字는 성래聖來이며, 천도교 도호道號는 자암此菴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국내외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안으로는 양반 지배층들이 외세와 결탁하여 민중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과 청나라 등 주변국들의 침략이 노골화 되어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반봉건, 반침략 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생은 15세가 되던 1880년에 원암源菴 김영원金榮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2년간 수학하였는데 당시에 후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이신 지강芝江 양한묵梁漢默 선생과도 동문수학 하였다. 1890년 동학에 입도식을 올리고 동학도인이 되었으며,1892년 삼례에서 있었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의 집회와 이듬해 원평에서 열린 척외양창의斥外洋倡義 운동을 위한 대집회에도 참여하였다. 1894년 고부에서 반봉건, 반침략을 기치로 내세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선생도 운암면 지천리에서 최승우, 김영원 선생 등 임실의 동학도들과 함께 기포 하였다.
임실이 낳은 위대한 선각자로 구국 항일 독립운동의 횃불을 높이든 박준승 朴準承 선생은 1866년 고종 3년 아버지 박호진 朴昊鎭 선생과 어머니 복씨 卜氏 사이에서 셋째로 임실군 청웅면 아랫배치(下舟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자字는 성래聖來이며, 천도교 도호道號는 자암此菴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국내외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안으로는 양반 지배층들이 외세와 결탁하여 민중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과 청나라 등 주변국들의 침략이 노골화 되어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반봉건, 반침략 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생은 15세가 되던 1880년에 원암源菴 김영원金榮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2년간 수학하였는데 당시에 후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이신 지강芝江 양한묵梁漢默 선생과도 동문수학 하였다. 1890년 동학에 입도식을 올리고 동학도인이 되었으며,1892년 삼례에서 있었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冤運動의 집회와 이듬해 원평에서 열린 척외양창의斥外洋倡義 운동을 위한 대집회에도 참여하였다. 1894년 고부에서 반봉건, 반침략을 기치로 내세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선생도 운암면 지천리에서 최승우, 김영원 선생 등 임실의 동학도들과 함께 기포 하였다.
1896년부터는 동학의 포교에 전념하여 접주가 되었으며, 이듬해 32세에 수접주首接主가 되었다. 1904년에 접어들어 동학교가 진보회를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개화운동을 전개하게 되자 동학지도자인 선생도 청웅면 남산리 홈다리(椧橋)에서 최승우, 김영원, 이기동, 조석걸, 허선 등 수백명의 동학교도들과 함께 단발斷髮을 하고 폐정개혁을 위한 진보회를 개최하였다. 이일로 48일간의 옥살이를 하였으며, 이때 손병희 손생이 여러차례 면회를 다녀가기도 하였다. 1907년에는 청웅면 향교리 성밭에 설치된 임실군 천도교 제2교구 교구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교령敎領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도훈道訓이 되었다.
1915년 김승화씨를 부인으로 맞으면서 교직수행을 위해 임실을 떠나 정읍군 산외면 평사리로 이사하였다. 1916년에는 전라도 도사로 임명되어 전라도 최고 책임자가 되었으며, 1918년에는 천도교 원로기구인 경도사敬道師에 추대되었다. 1919년 2월 24일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배하기 위해서 상경하여 다음날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권동진 선생으로부터 3.1독립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나는 본래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인 만큼 찬성한다."라고 말하면서 3.1독립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가 이처럼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농민운동을 하면서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은 반외세.반침략 자주독립의지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천도교 대표의 한사람으로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3월 1일 거사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면서도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결연한 독립의지를 보여주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한 후 1926년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사宗法師에 추대되었다. 이듬해인 1927년 3월 23일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 안계마을 자택에서 62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정읍군 북면 마장리에 안장하였다. 1962년 3월 1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이 추서되었다. 1965년 6월 6일 정읍군 민관합동 사회장으로 정읍군 구미동 성황산에 이장하였다.
원광대학교 교수 라종우
1915년 김승화씨를 부인으로 맞으면서 교직수행을 위해 임실을 떠나 정읍군 산외면 평사리로 이사하였다. 1916년에는 전라도 도사로 임명되어 전라도 최고 책임자가 되었으며, 1918년에는 천도교 원로기구인 경도사敬道師에 추대되었다. 1919년 2월 24일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배하기 위해서 상경하여 다음날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권동진 선생으로부터 3.1독립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나는 본래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인 만큼 찬성한다."라고 말하면서 3.1독립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가 이처럼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농민운동을 하면서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은 반외세.반침략 자주독립의지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천도교 대표의 한사람으로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3월 1일 거사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면서도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결연한 독립의지를 보여주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한 후 1926년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사宗法師에 추대되었다. 이듬해인 1927년 3월 23일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 안계마을 자택에서 62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정읍군 북면 마장리에 안장하였다. 1962년 3월 1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이 추서되었다. 1965년 6월 6일 정읍군 민관합동 사회장으로 정읍군 구미동 성황산에 이장하였다.
원광대학교 교수 라종우
추모시
백두산 내린정기 백련산 솟아올라 이나라 이끌한분 임실에 나셨으니 이고을 자랑이오 민족의 영도자라
갑오년 동학혁명 몸바쳐 앞장섰고 기미년 독립선언 서른셋 대표시니 일제의 잔인만행 이어찌 참을손가
위대한 나라사랑 그마음 대쪽같고 혹독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던절개 그정신 길이길이 천만년 빛나리라
홍봉성 짓고 김득원 씀
백두산 내린정기 백련산 솟아올라 이나라 이끌한분 임실에 나셨으니 이고을 자랑이오 민족의 영도자라
갑오년 동학혁명 몸바쳐 앞장섰고 기미년 독립선언 서른셋 대표시니 일제의 잔인만행 이어찌 참을손가
위대한 나라사랑 그마음 대쪽같고 혹독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던절개 그정신 길이길이 천만년 빛나리라
홍봉성 짓고 김득원 씀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756 박준승 선생 추모공원 독립운동가 자암 박준승 선생 옥중 시비 동상을 찾았다.
자암 박준승 선생 생가 기념공원
① 안채 ② 사랑채 ③ 나뭇간 ④ 거름간 ⑤ 공중화장실 ⑥ 유허비 ⑦ 기념광장 ⑧ 추모단 ⑨ 추모비
이곳은 기미 3.1 독립운동 및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신 자암 박준승 선생께서 태어나시며 성장하신 성역으로 청웅면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생가 복원과 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2006년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1,540㎡ 면적에 사업비 7억 2천만원이 투입되어 2013년 10월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선생의 위대한 나라사랑 정신이 길이 길이 천만면 빛나도록 기념사업에 적극 동참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선생의 위대하신 뜻을 추모하여야 할 것이다. - (사)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① 안채 ② 사랑채 ③ 나뭇간 ④ 거름간 ⑤ 공중화장실 ⑥ 유허비 ⑦ 기념광장 ⑧ 추모단 ⑨ 추모비
이곳은 기미 3.1 독립운동 및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신 자암 박준승 선생께서 태어나시며 성장하신 성역으로 청웅면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생가 복원과 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2006년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1,540㎡ 면적에 사업비 7억 2천만원이 투입되어 2013년 10월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선생의 위대한 나라사랑 정신이 길이 길이 천만면 빛나도록 기념사업에 적극 동참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선생의 위대하신 뜻을 추모하여야 할 것이다. - (사)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기미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독립운동가 자암 박준승 선생 옥중 시비 동상
천도교회 월보 제199호 1927년 7월호 66-67면에 수록되었으며 옥중에서 독좌심공 獨坐心工 연성수도 煉性修道로 득도의 경지에서 이룬 유.불.선 삼교의 종지 宗旨가 함축된 작품이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심정을 활화산처럼 토하신 오언장구 五言長句로 제목은 해설자가 가제 假題 하였다.
2018년 10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봉성 해설
천도교회 월보 제199호 1927년 7월호 66-67면에 수록되었으며 옥중에서 독좌심공 獨坐心工 연성수도 煉性修道로 득도의 경지에서 이룬 유.불.선 삼교의 종지 宗旨가 함축된 작품이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심정을 활화산처럼 토하신 오언장구 五言長句로 제목은 해설자가 가제 假題 하였다.
2018년 10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봉성 해설
기미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독립운동가 자암 박준승 선생 옥중 시비 동상
독립운동가 자암 박준승 선생 옥중 시비 동상
천도교회 월보 제199호 1927년 7월호 66-67면에 수록되었으며 옥중에서 독좌심공 獨坐心工 연성수도 煉性修道로 득도의 경지에서 이룬 유.불.선 삼교의 종지 宗旨가 함축된 작품이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심정을 활화산처럼 토하신 오언장구 五言長句로 제목은 해설자가 가제 假題 하였다.
2018년 10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봉성 해설
2018년 10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봉성 해설
무궁화의 다른 이름은 근화 槿花이다. 중국에서는 엣부터 우리나라를 근화지국이라 하였으니 내한성이 강하여 우리강토 전역에 피어있기 때문이다. 비바람 다 맞으며 여름에서 가을까지 일편단심 분홍색은 우리 민족성과 맞아 나라꽃이 되었다.
述懷 술회
기운 온화하고 구름 맑은 곳 꿈은 옛 동산의 봄을 깨운다. 귓가 들려오는 소리마다 노래이고 봄 속 형상마다 색색이다. 버들가지는 언덕 위 안개속에 잠겨있고 꽃 피는 날은 누대에 더디기만 하다. 빛은 거울에 비쳐 눈부시게 되돌아오고 달은 끝없는 물결에 잠기어 있도다. 하늘은 선계처럼 고요하고 아득한데 우주의 기운은 가득 차 활발하다. 말로 하기 어렵고 그리기 어려우니 금빛이라 할까 옥빛이라 할까. 도는 청정한 곳에서 생기고 덕은 무위의 조화에서 드러난다. 성품은 핏빛에 물들은 바다에 뜬 달이요. 마음은 거울에 감춰진 촛불 같다. 마음을 지키니 태산이 우뚝 섰고 기운을 바로 세우니 대양처럼 넓더라. 다시 태어나서 운수가 정해진다면 바꾸어서 새 세상 사람으로 나올 것이다. 중도를 잡으면 과불급이 없고 참을 지키면 큰 뜻으로 가득 채워진다. 다시 변하여 신령이 활발하여지면 오직 하늘의 뜻과 신령이 같을 것이다. 거울을 열면 새사람 얼굴이요. 봄이 오니 고목에 꽃이 새롭게 핀다.
기운 온화하고 구름 맑은 곳 꿈은 옛 동산의 봄을 깨운다. 귓가 들려오는 소리마다 노래이고 봄 속 형상마다 색색이다. 버들가지는 언덕 위 안개속에 잠겨있고 꽃 피는 날은 누대에 더디기만 하다. 빛은 거울에 비쳐 눈부시게 되돌아오고 달은 끝없는 물결에 잠기어 있도다. 하늘은 선계처럼 고요하고 아득한데 우주의 기운은 가득 차 활발하다. 말로 하기 어렵고 그리기 어려우니 금빛이라 할까 옥빛이라 할까. 도는 청정한 곳에서 생기고 덕은 무위의 조화에서 드러난다. 성품은 핏빛에 물들은 바다에 뜬 달이요. 마음은 거울에 감춰진 촛불 같다. 마음을 지키니 태산이 우뚝 섰고 기운을 바로 세우니 대양처럼 넓더라. 다시 태어나서 운수가 정해진다면 바꾸어서 새 세상 사람으로 나올 것이다. 중도를 잡으면 과불급이 없고 참을 지키면 큰 뜻으로 가득 채워진다. 다시 변하여 신령이 활발하여지면 오직 하늘의 뜻과 신령이 같을 것이다. 거울을 열면 새사람 얼굴이요. 봄이 오니 고목에 꽃이 새롭게 핀다.
생가 공원이 생기면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유허비
이 유허비는 그동안 박준승 선생의 생가를 타인이 소유하고 있어 유족인 박동래씨가 주치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부득이 마을회관 뒤 공터에 1996년 4월 4일 건립하였던 것을 임실군에서 시행한 「박준승 선생 생가 복원사업」이 2013년 10월에 준공됨에 따라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유허비는 그동안 박준승 선생의 생가를 타인이 소유하고 있어 유족인 박동래씨가 주치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부득이 마을회관 뒤 공터에 1996년 4월 4일 건립하였던 것을 임실군에서 시행한 「박준승 선생 생가 복원사업」이 2013년 10월에 준공됨에 따라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三.一 獨立宣言 民族大表 朴準承 先生 遺墟碑(3.1 독립선언 민족대표 박준승 선생 유허비)
三.一 獨立宣言 民族大表 朴準承 先生 遺墟碑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박준승 선생 유허비)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박준승 선생 유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