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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석두리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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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군 청웅면 석두리 250 애국지사 박성근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2001년 6월 12일 근립, 재종증손 정진 근식
愛國志士 訓練院 參奉 咸陽 朴公 成根 之墓(애국지사 훈련원 참봉 함양 박공 성근 지묘)
임실군 청웅면 석두리 250 애국지사 박성근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저 앞에 보이는 전체 산이 모두 같은 번지이다.
산 바로 앞에 묘소들이 보여서 확인하니, 다른 성씨의 묘소들이었다. 해당 번지는 이 묘소들 뒷부분 산부터이다.
위성지도를 보면서 조금 더 옆으로 이동하자 또 묘소가 보였다. 이곳은 해당 번지에 속하는 지역이다.
愛國志士 訓練院 參奉 咸陽 朴公 成根 之墓
(애국지사 훈련원 참봉 함양 박공 성근 지묘)
(애국지사 훈련원 참봉 함양 박공 성근 지묘)
애국지사 바로 앞에 있는 묘소는 아드님의 묘소였다.
박성근(朴成根)은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서울에서 보낸 독립선언서와 3·1독립운동에 관한 연락이 천도교 전주교구(全州敎區)를 통하여 임실군 천도교 교구에 도착한 것은 1919년 3월 2일이었다. 이날 그는 천도교 전교사(傳敎師) 최양옥(崔良玉)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그가 거주하는 청웅면(靑雄面) 지역을 책임맡아 배포하였다. 또한 그는 장남 원엽(元葉)으로 하여금 독립선언서를 청웅면사무소 게시판에 붙이게 하였으며 장차 우리나라가 독립할 것이므로 일제에 반대하라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4월 9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과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출처 : 보훈처 공훈록
공은 함양박씨 문량공파 휘 리 17대손 수심제공 휘 훈 11대손이시다. 고 휘는 철수요. 비는 남원양씨이다. 공은 대의를 위한 일념으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배일사상 고취와 항일정신 함양을 위하여 신학 개수학이 급선무라는 명제 아래 동지를 규합하여 애국 애족의 조국 광복을 위한 교육을 훈도 중 3.1운동이 거사되자 평소 구국 동지인 한도수 한기수 이강세 이기섭 최종수 이성의 공과 청웅면 구고리 촌중 대괴 목하에서 면민 수백명 참집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셨고 타군 각처에 연락대표로써 수일간 투쟁하다가 일군경에 피체되어 고문을 당하시고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개월을 선고받고 대구 복심법원 1년 여의 옥고 그리고 고등법원을 거쳐 출옥하였으나 가혹한 고문 여독으로 5년 여의 지병 생활로 가산이 탕진되었고 공의 지극하신 항일운동은 일생을 대의로 일관하시다. 1991년 4월 13일 독립유공자 대통령 유공훈장을 수여 1993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 대통령 유공훈장 표창을 수여한 사실 등으로 길이 청사에 빛나리라. 장우 임실군 청웅면 청두리 백호 등임좌원하다. 생 2남 2녀이시다. 장남 정엽 차남 경엽 손 재홍 증손 상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