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5
- 탐방로그
-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5 팔달산 서장대에 있는 만세시위지 및 수원3.1독립기념탑을 찾았다. 화성장대와 성신사에서 올라가는 길 가운데쯤 수원3.1독립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보인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설계 및 조각 서울 홍익대학교 김경화
협찬 경기도지사 남봉진, 수원시장 남영우, 재건국민운동 수원시위원회, 시내 각 중·고등학교, 시내 각 초등학교, 시내 유지
건립자 三·一 동지회
권용식 김규섭 김봉수 김성환 김운성 김광순 김철수 김행권 노득주 두학구 문광식 박용석 박정양 반찬일 박해문 방구현 손수복 손한식 손영균 송원섭 송원 송일범 신정옥 양석환 여봉옥 오상근 유유만 윤석한 이경항 이규복 이대현 이동성 이동희 이병희 이성환 이설경 이인신 이용성 이종특 이종호 이종창 임정산 임창식 정대영 정일환 정태화 정형모 정흥운 조재갑 조정환 조학주 장세걸 차인순 차철순 최계남 최진영 허정 홍사국 홍사운 황택주
일구육구년 시월십오일 준공
협찬 경기도지사 남봉진, 수원시장 남영우, 재건국민운동 수원시위원회, 시내 각 중·고등학교, 시내 각 초등학교, 시내 유지
건립자 三·一 동지회
권용식 김규섭 김봉수 김성환 김운성 김광순 김철수 김행권 노득주 두학구 문광식 박용석 박정양 반찬일 박해문 방구현 손수복 손한식 손영균 송원섭 송원 송일범 신정옥 양석환 여봉옥 오상근 유유만 윤석한 이경항 이규복 이대현 이동성 이동희 이병희 이성환 이설경 이인신 이용성 이종특 이종호 이종창 임정산 임창식 정대영 정일환 정태화 정형모 정흥운 조재갑 조정환 조학주 장세걸 차인순 차철순 최계남 최진영 허정 홍사국 홍사운 황택주
일구육구년 시월십오일 준공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5 팔달산 서장대에 있는 만세시위지 및 수원3.1독립기념탑을 탐방하려고 왔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華城將臺(화성장대)
서장대(臺將臺, 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화성장대와 성신사에서 올라가는 길 가운데쯤 수원3.1독립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보인다.
삼일독립기념탑
3.1독립기념탑
3.1독립기념탑은 단기 4302(서기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으리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것을 3.1동지회가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놓은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에 세워진 3.1독립기념탑은 왜경 수원결찰서 사법계주임 노구찌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것이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 12일 창립총회때 3.1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1독립기념탑 건립과 동 공원에 있는 대한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인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3.1독립기념탑은 단기 4302(서기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으리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것을 3.1동지회가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놓은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에 세워진 3.1독립기념탑은 왜경 수원결찰서 사법계주임 노구찌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것이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 12일 창립총회때 3.1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1독립기념탑 건립과 동 공원에 있는 대한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인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삼일독립운동 기념탑 비문 - 1919년 3월 1일
한국 민족의 울분과 감개가 멍울진 독립선언은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배달 겨레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만방에 선양한 바 있으니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원한에 함성은 지축을 뒤흔들고 자유와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족의 피맺친 절규는 온누리에 자유의 횃불을 밝힌 것이다. 일제 침략자에 항의하여 해일처럼 표효하며 일어선 민족의 불멸의 긍지였다. 총칼 앞에 쓰러지고 말 발굽에 짓밟히면서도 그리고 불길 속에 죽어가면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들의 의기는 불굴의 민족적인 대행진이였고 강렬한 민족의 서사시였다. 여기 역사의 향기서린 수원에서 그리고 제암리에서도 만세의 함성은 울리고 퍼지며 추성열일과도 같은 자주 독립에의 열정은 활화산의 불꽃처럼 일어났으니 여기에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엊고 고요히 귀기울여 들어보라. 나뭇잎 바람결 한 소리에도 영원한 민족의 생명이 천고의 기가 용솟음 차 오리다. 3.1은 민족의 얼이요 피요 구원의 샘터요 가리어지고 가꾸어지리니 정의의 채찍을 들고 길을 박힌 그 드높은 3.1의 얼은 자유와 평화 영광과 번영을 향한 줄기찬 민족의 전진속에 살아서 움직이며 굳건히 다지어지리다.
1969년 3월 1일 이병희 지음
한국 민족의 울분과 감개가 멍울진 독립선언은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배달 겨레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만방에 선양한 바 있으니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원한에 함성은 지축을 뒤흔들고 자유와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족의 피맺친 절규는 온누리에 자유의 횃불을 밝힌 것이다. 일제 침략자에 항의하여 해일처럼 표효하며 일어선 민족의 불멸의 긍지였다. 총칼 앞에 쓰러지고 말 발굽에 짓밟히면서도 그리고 불길 속에 죽어가면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들의 의기는 불굴의 민족적인 대행진이였고 강렬한 민족의 서사시였다. 여기 역사의 향기서린 수원에서 그리고 제암리에서도 만세의 함성은 울리고 퍼지며 추성열일과도 같은 자주 독립에의 열정은 활화산의 불꽃처럼 일어났으니 여기에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엊고 고요히 귀기울여 들어보라. 나뭇잎 바람결 한 소리에도 영원한 민족의 생명이 천고의 기가 용솟음 차 오리다. 3.1은 민족의 얼이요 피요 구원의 샘터요 가리어지고 가꾸어지리니 정의의 채찍을 들고 길을 박힌 그 드높은 3.1의 얼은 자유와 평화 영광과 번영을 향한 줄기찬 민족의 전진속에 살아서 움직이며 굳건히 다지어지리다.
1969년 3월 1일 이병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