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 652
- 탐방로그
- 1985년 지천리 주민이 모두 한 마음으로 세운 한영태 선생의 묘비석이다. 후손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묘에서 한 번 위쪽으로 옮겨 이장을 하셨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3.1투사 한영태 선생지묘 지천리 주민일동 1985.7.20
열사 혁암 한선생 영태 지묘
선생의 성은 한씨요 휘는 영태요 자는 성인요 호는 혁암이시니 임실군 둔남면 한암리에서 휘 기상의 장남으로 1855년 을유 3월 8일 출생하시니 창원공 휘 소후이시다. 선생은 성장함에 따라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청렴강개하여 가세가 빈궁한 속에서도 정의를 위하여는 수화를 불편하시다 18세에 실부로 조고되었음에도 주경야독으로 학문을 연마 인격야도에 힘쓰셨으며 1895년 갑오 동학혁명시에는 이 운동의 선구자인 최승우, 김영원 선생과 정교 동생 공사를 맹약하고 접주의 신분으로 당시 학정에 궐기한 동지들과 임실
남원을 정복 서울을 향하여 공주까지 진격하였으나 한일연합군에 패하여 전봉준 김홍기 김개남은 체포되어 참수를 당하고 선생은 최승우 최유하 김학원 최동필 등과 순창 회문산에서 6년여의 세월을 은피하시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실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절치부심 왜정에 항거 호적등재 거부운동을 선동하였으며 망국의 무주민임을 통탄하시다. 1917년 정미년 선생은 62세의 노령으로 천도교 임실교구장에 취임 교인들을 규합 태동하는 기미 3.1운동 거사에 대비하시고 1918년 12월 말 거사 모의를 위하여 전주시 고사동 이군필가에 각군 대표자회의에 임실대표로 최승우 김영
기념비 부로들의 증언을 고증하였읍니다.사록은 천추에 전승하므로 당시의 사실들을 오류없이 기록하였을 것이며 비각지문은 후세에 귀감이므로 고증없이 각하였으리오.
명왈 종국주망 단심거의 단설불언 이혈수신 결항자결 종언성인 위국정충 천추각각
명왈 종국주망 단심거의 단설불언 이혈수신 결항자결 종언성인 위국정충 천추각각
원래 묘에서 한 번 이장을 하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