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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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786
탐방로그
삼혁당 김영원 선생의 묘를 찾았다. 선생의 생가터 뒷산에 모셔져 있는데 매우 가파른 산이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하시니 장남 교민은 단식끝에 끝내 분사하였다. 선생은 이지음 성문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기관지인 운무지를 발간하시려다 일경에 누설되어 폐회 폐간되었다. 이어서 진안, 전주, 장성 교구장을 차례로 거쳐 강습소장 교훈및 도훈을 지내시다. 1918년 1월 오세창, 권동진, 라용환, 홍병기, 홍기조, 최린등과 구국운동을 하시다가 천도교 교지도자 105인, 49인, 45인의 한사람으로 뽑히시어 독립운동기금이 될 대성미 거출에 힘쓰시다. 1919년 2월 손병희선생 지도아래 45인회의에서 3.1운동에 합의 33인 민족대표에는 제자 박준승, 양한묵 두사람을 참여시키고, 기미 2월에 전주부중 이군필집에서도내 여러 지도급 동직들과 모여 동월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 천도교 전교실 임실읍 교구실에서 수차 모여 모의하고 3.1운동을 지휘하시다 3월 27일 일경에 체포되어 훅독한 고문이 골수에 스며드니 8월 26일 전주감옥에서 67세를 일기로 옥사하시다.
스스로 삼혁당이라고 호를 지으시니 이것은 동학혁명으로 천번째 혁명하시고, 50세에 머리를 깍아 두번째 혁명하시고, 3.1운동참여로 일생동안 세번이나 혁명한것을 뜻하는것이다. 보청상의 휘는 두희, 자는 화경, 별명은 병옥, 병원, 병희라 하고 도호를 원암이라 하시어 여섯가지의 이름으로 행세하신것은 왜놈의 감시를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1963년 제 45주년 3.1절에 대통령포창을 받으시다. 이제 선생은 가셨으나 드높고 맑은 기상은 만고에 푸르러 길이 청사에 빛나리로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복원된 삼요정이다.
생가터 뒷산 순국열사 삼혁당 김영원 선생 묘. 매우 가파른 산 위에 있었다.
GPS상의 주소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786이다.
순국지사 삼혁당 김영원 선생 지묘
여기에 묻히신 김영원 선생은 1853년 8월 5일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에서 김성집의 차남으로 출생하시다. 3세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15세에는 손가락을 짤라 피를 드렸으나 끝내 어머니가저 잃으시니 주경야독으로 학문이 대성하시어 26세에 태인 무성서원의 장의와 전라도서원의 색장이 되시다. 동학혁명에는 임실북접주로 혁명이 실패후에는 6년간을 은거하시다. 1900년 상운면 훈장을 두번째 지내시고 1904년 전주에 창동학교를, 1906년에는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에 삼화학교를 각각 세워 교장으로 취임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시다. 1907년 천도교 순차교구장 교령이 되시고, 한일합방때에는 의분으로 3일간 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