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3.1독립운동기념탑

4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산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산3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3.10 만세운동에 참가한 오수국민학교 학생 및 3.18, 3.22 9개면에서 독립만세운동자를 추모하고
오수지역 및 임실지역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오수3.1독립운동기념탑은 기미년의 숭고한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오수면을 비롯한 임실군 전역의 만세운동에 차여하다 희생당하신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민중의 숭고한 애국충정과 뜨거운 자주독립의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오수3.1독립운동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에서 임실군내에서 제일 먼저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졌던 오수면 이 곳에 1991년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1919 기미년 3.1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임실 오수면 오수리에서 3월 10일 오후공립보통학교 설산 이광수 선생의 지도하에 10대 보통학교 학생을에의한 만세운동이 임실군내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오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3.10만세운동은 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만세의거이며 이 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임실군 전역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3.10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3.12 임실읍내에서도 2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3월 23일 오수리 장날에는 이기송, 오병용(吳秉鎔), 이만의등이 중심이 되어 2천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또한 청웅면을 비롯한 지사면, 강진면, 신덕면, 성수면, 운암면 등에서도 3월15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4월 7일까지 계속되었고, 이 기간동안 수십명이 검거되어 옥고를 겪었으며 한영태(韓榮泰), 김영원 등은 왜경의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셨다. ... 후략 ....
獒樹三一獨立運動記念塔(오수삼일독립운동기념탑)
3.10 만세운동에 참가한 오수국민학교 학생 및 3.18, 3.22 9개면에서 독립만세운동자를 추모하고
오수지역 및 임실지역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오수3.1독립운동기념탑은 기미년의 숭고한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오수면을 비롯한 임실군 전역의 만세운동에 차여하다 희생당하신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민중의 숭고한 애국충정과 뜨거운 자주독립의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오수3.1독립운동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에서 임실군내에서 제일 먼저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졌던 오수면 이 곳에 1991년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1919 기미년 3.1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임실 오수면 오수리에서 3월 10일 오후공립보통학교 설산 이광수 선생의 지도하에 10대 보통학교 학생을에의한 만세운동이 임실군내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오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3.10만세운동은 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만세의거이며 이 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임실군 전역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3.10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3.12 임실읍내에서도 2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3월 23일 오수리 장날에는 이기송, 오병용(吳秉鎔), 이만의등이 중심이 되어 2천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또한 청웅면을 비롯한 지사면, 강진면, 신덕면, 성수면, 운암면 등에서도 3월15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4월 7일까지 계속되었고, 이 기간동안 수십명이 검거되어 옥고를 겪었으며 한영태(韓榮泰), 김영원 등은 왜경의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셨다. ... 후략 ....
忠義(충의)
여기 충의로 다져진 독립만세 운동은 길이 호국의 등불되리
애국지사명록
이기송, 양태환, 심상용, 이주의, 이기우, 오병용, 이윤의, 황해수, 이준명, 이정의, 김행즙, 하용기, 한돈석, 김용식, 박판덕, 허근(許根),노유원,이재의,김종태,곽병희,허봉(許木+鳯),이경구,허박(許樸),이회열,이병렬,김종윤,김정업,이용의,김종식,이만의,김찬오,김종창,이송의,이영의,김태순,이춘만,이정우,이창준,이하의,이회근,곽병민,허섭(許燮),진만조,김일봉
19세기 국제적 흉적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민족은 국권회복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중 때마침 만국평화회의에서 월순아 제창한 민족자결주의가 채택되자 우리겨레는 자주독립을 할수있는 호기를 얻어다 기미년(서기 1919)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조선이 자주독립군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다. 이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충천하자 저 간악무도한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곳 오수지방의 만세운동은 유달리 계획이 치밀하였고 시위규모가 굉대(宏大)하여 피화(被禍)도 혹심하였다. 오수는 원래 남원의 한 고을로서 산천이 수려한대더 고래로 남원 임실 장수 순창에 통하는 교통이 중심지로 찰방역이 있어 이 근방에서 역사적으로 수 많은 현민들이 배출되니 일찌기 교화가 넓고 깊게 미쳐 ○곡이 돈후하고 충의를 숭상하하여 미물인 개도 주인을 의하여 의롭게 몸을 바친 이름있는 고장이다. 따라서 이 지방에서 보다 치열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곳 오수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기송은 일찌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신망높은 우국지사이다. 동지 오병용과 함께 서울의 3.1독립운동이 참여하고 그곳 지도본부와 연락하면서 이 지방 심상용 이조열 이주의 이기○ 이용의 이윤의 김종윤 이만의 이영의 이송의 이창준(무순)등 여러 지사들과 모의하여 오수를 중심으로 한 인근 면리에까지 지도책을 두고 대규모의 성과를 거둘수 있는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거사일을 3월 23일(음 2월22일) 오수 장날로 정하였다. 이 날에 사용한 태극기는 이기송의 집과 이기상의 서당 그리고 이병용의 집에서 수천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3월 2일 박판덕의 독립선언문 게시가 있었고 3월 10일 오수보통학교 일부 학생들이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3월 18일 김일○이 오수시장에서 다수인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다음 장날의 일대 거사를 의식한 주민들이 확대하지는 않았다. 23일 오수시장에는 둔남 삼계 지사 덕과 성수 산서 보절 기매등 인근 면과 남원 순창 장수 등지에서 까지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오전 10시 이기송이 시장에 모인 군중앞에서 조선독립의 당위성과 만세운동이 절실성을 역설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호응하는 2천여의 군중이 시장과 원동산에 집결하여 준비되었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왜경주재소를 습격 구금되어있던 이기송을 풀어내고 면사무소에 들려 면직원들을 합세케하여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는 등 일대 시위가 일모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남원의 헌병대와 임실의 왜경들이 출동하여 총검으로 진압하니 허박이 적의 총에 맞아 순사하였고 수십명이 부상하였으며 40여명이 체포되므로 군중이 한때 해산되었으나 밤이되어 어둠을 타고 다시 모여든 34백명의 군중은 날이 밝을때까지 만세를 위치며 시위하였다. 이 오수의 3.1독립만세운동은 유교 불교 천도교와 기독교등 모든 종교인이 함께 참여하였고 교육자 학생 관리와 민중이 함께 뭉치고 7~8개 면의 주민이 일치단결하였으니 충의로써 나라를 찾는데는 종교와 신분 지역의 구별을 초월하여 생명을 바치겠다는 거룩한 항일투쟁이었다. 이떄의 희생과 전통적인 충의의 얼은 광복을 얻는 씨알이 되었다. 이에 희생된 애국지사들의 충혼을 위로하면서 길이 자손만대에 호국의 귀감이 되게 하기위하여 지방민의 정성을 모아 이 탑을 세우고 여기에 간략한 운동의 사실과 찬명을 붙인다.
3.1독립만세의 함성이 온 누리에 외쳐지기 73년 충의의 고장 이 고을에서도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한 그 당사 2천여 군중이 봉기한 전국 10대의거지로 꼽는 만세운동이 있었으니 늦게나마 여기 이 장거를 주도 희생하신 44인열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경건하게 현양하도다. 탑건립에 앞서 완전한 자료를 얻고자 뜻을 같이 한 모든 분들이 노력하였으며 재판기록에 준하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듯한 탑의 형상은 애국시민의 기제와 열사수를 상징함이로다. 이곳은 팔공산에서 발원된 기백이 북부 산령봉을 우뚝 세운 용시세로서 지리산 천황봉을 마주 본 용두지형으로 열사님들의 편안한 쉼터로다. 이 ㅌㅂ에 각석한 44분의 응혈된 애국지사의 영혼은 년년세세 영원불망하리라. 우리 모두 새로운 각성으로 선열의 구국충열의 정신을 받들어 우리는 물론 후세들의 혼을 깨우치게 하는 산 교육의 장으로 하자 여기에 물심양면으로 성의 깃든 제현의 방명을 새기노라.
1991년 월일 오수3.1만세운동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