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정 정사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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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
탐방로그
둔데기마을 이웅재 고가 둔덕이씨 종가를 찾았다. 전주이씨 중에서 이곳 춘성정 후손들을 특별히 '둔덕이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둔덕이씨 중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이 되신 분이 매우 많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有明 朝鮮 孝子 贈 通政大夫 吏曹參議 李文胄 之閣(유명 조선 효자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 이문주 지각)
春城正精舍紀蹟碑(춘성정 정사기적비)
春城正 精舍紀蹟碑(춘성정 정사 기적비)
공은 國姓(국성) 전주이씨로 시조 신라 司空(사공) 휘 翰(한)의 27세손이요. 태조대왕 휘 성계의 6세손임. 태종 제2왕자 효령대군의 증손 춘성부정 휘 聃孫(담손)이 되신 바 성조 21년 출생 연산군 갑자사회를 피하여 한양으로부터 남하 둔덕리 오노산하하시다. 섬진강 상류에 율천 서도천 합류가 삼계석문을 감싸주고 노적봉을 안산으로 전형적인 背山臨水(배산임수) 飛天蜈蚣(비천오공) 길지에 저택을 경락 건축양식 측면 1칸 맛배지붕에 홀처마 토기와집으로 세워 은둔하시며 난을 피하신 후 彰善大夫(창선대부) 春城正(춘성정)에 오르시다. 근 5백년 옛모습을 가시지 않케 원형을 유지 대대 종손만이 세거하여 온 17세손 웅재 보호함. 공의 계자 휘 渾(혼) 忠義衛(충의위) 隱德(은덕) 不仕以(불사이) 손 휘 曄恩(엽은)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생부 ○산군 장손 휘 대윤 호 금헌 진사 两科以正郎(양과이정랑) 임진란시 의병을 규합 금
산 와평 적진에서 고경명 의병군과 합세 격전 인훈 노승 통정 상호군 향 금곡서원 차손 휘 경윤 충의위 어모장군 증손 휘 엽 연당 임진란 종선 공 모량 운음 사 주부 기고봉 유명 급궤불절승 동지 부총관 ○원종훈 현손 휘 유형 호 춘파 금부도사 연임 휘 상형 호 천묵재 홍문교리 수 ○ 어사 인동부사 향 요계서원. 6세손 효자 증 통훈대부 이조참의 이문위 지려. 10세손 증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휘 덕환 호 덕은 유업독 예춘평 9곡 시 유존 12세손 회인 2녀 열녀 행주 기우양 처 전주이씨 지려. 한말 왜침시 을사5조약 정미 7조약으로 망국 통분한 賢宗(현종) 석용 의병대장은 동년 8월 마이산 호남의병 창의동맹 조직하고 500여 의병이 왜병의 총검을 빼앗아 무장 필사항전 끝내 중과부적 계축년 28의사 순국함과 갑인년 피검 대구 왜옥 순국 7년 동안 왜적의 눈을 피하야 공의 13세손 참서정우 무신 십량 임자 이십량 14세손 참봉 동의 임자 이십오량 의관 한의 십오량 군자금으로 감역 십의답 사두 낙대금은 장례시 부의금으로 그 구국충절은 선조 유풍 받아 선행 위적은 세칭 자자하시였다. 15세손 기송 호 운산 경술년 국치 후 구국 이념에 불타 애국애족운동에 정신 105인 사건 왜옥고 및 3.1운동을 맞아 애국지사 규합 오수시장 천여명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 선창하니 만세대열이 이천여에 달하다. 천지를 진동시키니 왜병의 난사한 총검에 許僕(허복) 의사 순국함과 피검 7년 왜감옥 광복 공훈 단장 국립묘지 안장 의사 회열 4년 윤의 주의 용의 기우 각 3년 재의 만의 준명 각 2년 정의 영의 송의 각 1년 정의 하의 회근 창준 각 8월 기원 6월 왜옥 기동 대통령 표창장 수여. 15세손 기수 3녀 경주 김정오 처 차남 임실군수 표창 및 기정 효자 16세손 강화 처 동래군 분남 강웅 처 양천 허정희 17세손 영재 처 연안 김주숙 대종회 종약장 효부 상패 수여. 위의 충의 효열은 실로 만고의 빛이며 吾家(오가) 문호를 번창케 한 餘馨(여형)이니 후예들은 門興人貴(문흥인귀)하며 百子千孫(백자천손)으로 父慈子孝(부자자효)하고 男忠女貞(남충여정) 兄恭弟順(형공제순) 夫妻和睦(부처화목)으로 信義篤親(신의독친)과 崇祖惇宗(숭조돈종)함과 부귀영화 만대유전하기 위하여 돌에 새겨 세우고자 함이니 吾宗(오종)의 숭앙을 한곳에 모두고 그 웅지를 영원의 지표로 세워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함이다.
광복 45년 기사 7월 무산 종중 거북좌대 지원 14세손 신기 감역 손 강호 글 짓고 세움
담양인 전남린 근서
지방민속자료 제12호 서기 1977년 12월 30일
광복 후 보수공사 개요 임자년 대종중 일백오십만원 수월 종중 백미 오입 강언 학재 신재 창재 일백만원 기미년 각동 종중 백미 일십입 계해년 대종중 삼백만원 황금리 종중 덕재 일천만원 1988년 국비 육백오십만원 지원 지방비 육백오십만원 시행청 전라북도와 임실군 1989년 국비 일천만원 지원 지방비 일천만원 시행청 전라북도와 임실군
역사를 俯瞰(부감)하는 오노산 飛天蜈蚣(비천오공) 길지에 억만년 푸른산 앞에 하고 우뚝 솟은 춘성정정사에 정성모아 현판을 봉헌합니다.
대한민국 72년 경오 8월 일
17세손 완재 광재 년재 명재 현재, 녀 옥재 효재 순재
春城正祠(춘성정사)
春城正祠(춘성정사)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 둔데기마을 이웅재 고가 둔덕이씨 종가
이웅재 고가(李雄宰 古家)
이 집은 이담손(李聃孫)이 조선 연산군 6년(1500)경에 지은 것을 여러차례 보수한 건물이다. 이담손은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증손이며, 전주이씨로서는 둔덕리에 맨 처음 들어온 사람이다. 경사면을 축대로 쌓은 장방형의 대지에 자리한 이 집은 동남쪽을 향하여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위치하고 있는 ㄷ자형의 가옥이다. 사랑채는 일자 형으로 고종 1년(1864)에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세웠다는 기록이 잇으며, 대문에는 고종 7년(1870)에 이문주(李文胄)에게 내린 효자정문의 현판이 걸려있다. 대문도 이 때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이 지방 사대부들의 주거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집이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2호 이웅재 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