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면수 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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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088-10
탐방로그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088-10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위치한 애국지사 필동 임면수 선생 구 묘비를 찾았다. 효자정려 바로 옆에서 애국지사 필동 임면수 선생의 옛 묘비를 찾을 수 있었다. 세류동 공동묘지가 지역개발되면서 삼일학교 내로 이장되었고, 그후 임면수 선생의 묘가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곳에 위대한 우리의 선각자 임면수 선생이 잠드셨다. 서기 1874년 6월 13일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 지금의 (수원시 매향동)에서 나셔서 서기 1930년 11월 29일 56세를 일기로 서거하시다. 선생은 일찌기 깨달으신 바 있어 신교육의 필요를 느끼시고 당시 나중석 이하영 이성의 최익환 차유순씨 등 다섯 동지와 더불어 삼일남여학교를 창설하시어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우리시든 중 국운이 기울어지자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으시고 고국을 떠나 서간도와 북만주 일대를 전전하시며 조국과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이 정신은 바로 예수의 희생정신을 본받으신 것으로 거룩한 이 교훈은 이 겨레와 함께 영원히 빛나리.
서기 1964년 4월 25일
유족 장자 일상 장손 병화 병무
수원 동상업고.중등학교
매향 여실업여고등.중여학교
추도위원회 명예회장 허철, 회장 김병호, 부회장 최규남, 동 홍사운, 동 이실경
충무 정일환, 재무 송순호, 섭외 정순규, 간사 김태병 위원 일동
光復先烈 必東 林冕洙 先生 之墓
(광복선열 필동 임면수 선생 지묘)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088-10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 애국지사 필동 임면 선생 구 묘비를 찾아가고 있다.
수원박물관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선정비 등의 많은 유적이 전시되고 있었다.
효자각도 이곳으로 이전되어 있었다.
전주유씨 효자정문 – 조선시대 | 수원시 향토유적 제17호
전주류씨 효자정문은 수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효자정문으로 전주류씨 문중에서 기증한 것이다. 정문旌門은 충신忠信, 효자孝子, 열녀烈女 등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될만한 인물의 행적을 널리 알리고자 마을입구나 집 대문앞에 나무로 만들어 세우던 붉은 문이다.
숙종때 효자인 류태명柳黍明(1666~1716)과 그의 증손자이면서 효자인 류의柳誼(1734~1799)의 정문을 보호각 안에 상하로 걸어서 야외전시 중이다. 류태명은 1694년 문과 급제 후 관직에 나가 우승지右承旨를 지냈다. 효자 정문은 1743년(영조 19)에 제작되었다. 류의는 1769년 문과 급제하고 많은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언행이 신중하고 검소했다고 전해진다. 효자 정문은 1812년(순조 12)에 제작되었다.
효자정려 바로 옆에서 애국지사 필동 임면수 선생의 옛 묘비를 찾을 수 있었다.
애국지사 필동 임면수 선생의 옛 묘비이다.
필동 임면수 선생 묘비(必東林冕洙先生之墓)
근대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의 묘비이다. 임면수는 삼일학교 설립자 중 한명으로 수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1912년 만주 서간도 환인(桓仁)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양성(養成)중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부민단 결사대(扶民團 決死隊)로 항일투쟁을 했다. 1921년 평양감옥에 투옥되었고, 1931년 고향인 수원에서 사망하여 세류동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 비는 1964년 4월 임면수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삼일학교에 세웠다.

세류동 공동묘지가 지역개발되면서 삼일학교 내로 이장되었다. 그후 선생의 묘가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光復先烈 必東 林冕洙 先生 之墓
(광복선열 필동 임면수 선생 지묘)
光復先烈 必東 林冕洙 先生 之墓
(광복선열 필동 임면수 선생 지묘)
이곳에 위대한 우리의 선각자 임면수 선생이 잠드셨다. 서기 1874년 6월 13일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 지금의 (수원시 매향동)에서 나셔서 서기 1930년 11월 29일 56세를 일기로 서거하시다. 선생은 일찌기 깨달으신 바 있어 신교육의 필요를 느끼시고 당시 나중석 이하영 이성의 최익환 차유순씨 등 다섯 동지와 더불어 삼일남여학교를 창설하시어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우리시든 중 국운이 기울어지자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으시고 고국을 떠나 서간도와 북만주 일대를 전전하시며 조국과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이 정신은 바로 예수의 희생정신을 본받으신 것으로 거룩한 이 교훈은 이 겨레와 함께 영원히 빛나리.
서기 1964년 4월 25일
유족 장자 일상 장손 병화 병무
이곳에 위대한 우리의 선각자 임면수 선생이 잠드셨다. 서기 1874년 6월 13일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 지금의 (수원시 매향동)에서 나셔서 서기 1930년 11월 29일 56세를 일기로 서거하시다. 선생은 일찌기 깨달으신 바 있어 신교육의 필요를 느끼시고 당시 나중석 이하영 이성의 최익환 차유순씨 등 다섯 동지와 더불어 삼일남여학교를 창설하시어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우리시든 중 국운이 기울어지자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으시고 고국을 떠나 서간도와 북만주 일대를 전전하시며 조국과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이 정신은 바로 예수의 희생정신을 본받으신 것으로 거룩한 이 교훈은 이 겨레와 함께 영원히 빛나리.
서기 1964년 4월 25일
유족 장자 일상 장손 병화 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