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산67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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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환 선생 묘는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산67에 위치해 있다.
비석에는 쓰여있지 않은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기원(崔基元, 1937~2009)은 부안중학교 1학년 때 겪은 일을 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이 나던 그해 7월에 논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알고 보니 경찰이 동진지서로 데려갔다 한다. 3일 후에는 경찰들이 퇴각하면서 유치장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줄포면 후촌 야산 골짜기에서 7월 19일 새벽에 사살했다.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40고라당’으로 불렀다. 40여명이 죽었다했다 해서 붙여진 슬픈 이름이다. 그 때 아버지는 한창 일할 나이인 갓 마흔이었다.
최순환의 해방 후 활동은 좌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보다는 진보적인 주변 지식인들의 권유로 소극적인 참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좌익 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해방 후에 자주적인 나라 건설의 일부를 맡는다는 책임감으로 후진 교육에 매진했을 뿐이다. 해방 후에도 야학을 열어 공부를 하고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지역교육에 헌신하고자 당오분교를 세우기 위해 당오초등학교 설립후원회장이 되었다. 4~6㎞를 걸어서 동진 초등학교에 가는 초등학생들에게 가까운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나라 위한 독립운동가는 유명을 달리한지 60년 후에야 독립유공자가 되고 2년 후에는 보훈처에서 기념비를 세우도록 지원을 했다. 필자는 그때 참석하여 최순환의 딸 최기숙이 기념비를 안고 오열하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문래당산 선영 건국포장 경산 최순환지사 묘를 찾고 있다.
GPS상의 주소는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산67이다.
건국포장 경산 최순환지사
부인 평해 황희남 정업화 묘
부인 평해 황희남 정업화 묘
부안 당북 탐진최씨 호철 공 부인 마포 온양 정성녀 문래당은 청상의 업닦고 공의 동생 원철과 장신포 문화유원 사이에 낳은 맏이 상진을 호주 아들 삼아 가문세우고 가족 선산도 가꾸었습니다. 서곡 최상진과 독다리 고령 신영우는 1911년 음 9월 9일 맏아들 순환을 낳아 1912년 9월 9일생으로 호적에 올렸습니다. 산수절지 금원에게 서첩 받아 익힌 순환은 들독 들어 올리고 구실 평해 황희남과 혼인했고 서울중동학교 중퇴하고 귀향하여 매가리간 항일의 터 삼아 혹독한 옥고를 치렀습니다. 모 성재 당북간이 학교와 오거리 당북분교 후원회를 맡아 교육과 계몽의 디딤돌을 놓으시던 경산 최순환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불 밝힌 나라의 듬직한 상록수였음에도 해방의 기쁨 누릴 새 없이 항일의 옥고가 주홍글씨되어 어둠 깔린 이 초적개길을 마지막으로 밟았습니다. 1950년 7월 19일 새벽 못다 피고 진 억울한 생, 생가인 당상리 466번지와 더불어 호주상속인으로 가족선산 문래당산 산66번지를 유택으로 삼으셨습니다. 면 소재지 오가며 시대의 어둠을 곱씹던 이 초적개길이 원한한 경산의 묘도길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인 황희남 정업화는 선영과 일곱자녀 길 닦느라 법명처럼 업 쌓으며 집 나간 피붙이들 그리워 까지 울때 마중 나가곤 하던 그 까치병 앓다가 1992년 7월 15일 남편 곁으로 가셨습니다. 60년 갑주에 꽃이 핀다는 무쇠나무처럼 2010년 추서된 대한민국 건국포장 제2453호의 독립유공 경산 최순환지사의 원혼을 위해 그 다니시던 두렁길에 오늘에야 길 닦음의 비를 세우옵니다. 역사의 어둠속에서 부릅뜨신 눈 이제 편히 감으시고 길이길이 번영될 조국의 미래에 평안히 함께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