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78
- 탐방로그
- 남원시 천거동 78 광한루 주차장에 위치한 동학농민군 교수장 동학과 동학농민군 유적지 광한루원 표지석을 찾았다. 광한루원 비석 한 면에는 남원독립만세 유적지비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광한루원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광한루원
1960년대 광한루원 확장사업 이전에 광한루원의 호수 나목은 성밖시장(남원장)이었다. 동학의 교조 수은 최제우선생이 혹세무민,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1861년 겨울, 경주에서 피신차 남원에 들어와 광한루 오작교 주변 서형칠의 약방에 머물다가 공창윤의 집을 거쳐 교룡산성 내 덕밀암으로 옮겨 은적암이라는 현판을 걸고 경전 집필과 포교활동을 하였는데 이것이 호남에 동학이 전파 된 시초다. 서형칠약방은 광한루원 경내인 완월정 앞 호석 근방으로 추정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음) 11월 28일 전라좌도 농민군이 민보군과 일본군에 잡혀 처형되었는데 대부분의 농민군들이 성밖시장 저자거리에서 참살당하였다. 그 위치는 광한루원 정문에서 본 잔디광장 시작 지점 부근이다.
1960년대 광한루원 확장사업 이전에 광한루원의 호수 나목은 성밖시장(남원장)이었다. 동학의 교조 수은 최제우선생이 혹세무민,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1861년 겨울, 경주에서 피신차 남원에 들어와 광한루 오작교 주변 서형칠의 약방에 머물다가 공창윤의 집을 거쳐 교룡산성 내 덕밀암으로 옮겨 은적암이라는 현판을 걸고 경전 집필과 포교활동을 하였는데 이것이 호남에 동학이 전파 된 시초다. 서형칠약방은 광한루원 경내인 완월정 앞 호석 근방으로 추정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음) 11월 28일 전라좌도 농민군이 민보군과 일본군에 잡혀 처형되었는데 대부분의 농민군들이 성밖시장 저자거리에서 참살당하였다. 그 위치는 광한루원 정문에서 본 잔디광장 시작 지점 부근이다.
남원독립만세유적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때 천도교가 주도한 만세운동이 싪한뒤 덕과면장 이석기가 주도한 3월3일 동해골과 계명당고개 만세운동 다음날인 4월 4일 남원장날 성밖시장(현 광한루원)에 모인 군민들이 대대적으로 만세를 부르며 오작교를 거쳐 남원부관아를 향하며 성안시장(현 남원교육문화회관) 군민들과 합류하려다가 일제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잡혀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때 천도교가 주도한 만세운동이 싪한뒤 덕과면장 이석기가 주도한 3월3일 동해골과 계명당고개 만세운동 다음날인 4월 4일 남원장날 성밖시장(현 광한루원)에 모인 군민들이 대대적으로 만세를 부르며 오작교를 거쳐 남원부관아를 향하며 성안시장(현 남원교육문화회관) 군민들과 합류하려다가 일제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잡혀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남원시 천거동 78 광한루 주차장 동학농민군 교수장 동학과 동학농민군 유적지 광한루원 표지석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