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현 숭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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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 산29
탐방로그
남원시 신촌동 산29 애국지사 추모원 내에 위치한 한태현 숭모비를 찾았다. 한태현 선생의 숭모비는 애국지사 추모원에 있으며, 이 장소는 동립교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남사 한태현 선생 숭모비
한태현 선생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1919년 조선독립대동단에 가입한 후, 조직확대를 위해 남원군 내에 청년단을 조직하고 단장의 일을 맡아 단원들로부터 모금한 독립운동자금을 대동단본부에 전달하고, 청년단원의 모집에 힘을 기울임.

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전협보, 최익환 등이 전 조선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써,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으며, 황족·진신·유림·종교·교육·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지역구역 등 11개 단으로 분류하고,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 종합하므로써 범국민적 조직확대를 계획함에 따라, 선생은 동지 김재구, 강경진 등과 함께 동지들을 포섭하였고, 독립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함.

선생은 대동단본부에서 보내온 독립신문과 애국전단을 동지들에게 배포하는 등 애국활동을 계속하던 중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 상해 망명계획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어,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고, 이로 인하여 선생은 1920년 3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름.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0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고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하여 추모하고 있음.

「독립운동사 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81~982면」 「대전현충원 묘적부」
2017년 4월 23일 건립 광복회 전북지부 남원시지회 남사 선생 숭모회
남사 한태현 선생 연보

1878.9 남원군 사매면 대율리에서 출생
1919.4 사매면과 남원북부시장에서 만세운동
1919.8 조선독립대동단 남원청년단장 역임
1919.9 대동단본부에서 보내온 독립신문과 전단 배포
1920.1 왜경에 피포
1920.3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징역형 선고받음
1920.4 상고심에서 기각되어 대구형무소 복역
1921.3 형기 마치고 출소 후 고향에서 후학 양성
1951.2 별세
1983.4 대통령 표창
1990.12 건국훈장 애족장
1994.9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안장
2017.4 남원시 애국지사 추모원에 숭모비 제막
묘비문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

인간 최고의 덕목은 애국심이라며 언제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노라.

자신의 생명보다 더 큰 존경과 엄숙함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희생하였으니 그 이상의 완성된 삶은 없으리라.

그리하여 독립이 우리의 기초가 되게 하고 그 기쁨이 하늘까지 이르게 하였노라.
남원시 신촌동 애국지사 추모원(동립교 건너편)을 찾았다.
독립유공 애국지사 추모비

여기 이곳은 남원지역 출신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하다 순열한 독립운동가 10인의 추모비가 세워진 곳이다. 일본이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1907년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남원읍에서 왜군들을 기습공격하다 순열한 양한규 선생과 그 휘하에서 활동하던 진사 박재홍.참봉 양문순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의적비와 남원.구례.곡성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전규문 선생,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구국활동을 전개한 박기영.박권영 선생. 1919.4.4(장날) 남원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적군의 총탄에 관통상을 입고 순열한 정한익.황찬서 선생. 1929년 야학을 세워 문맹퇴치 활동을 펴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 선 이두석 선생의 추모비.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을 규탄하며 항일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순열의사 정암 이태현 선생 추모비 등이 세워져 독립유공 애국지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
애국지사 남사 한태현 선생 숭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