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산30-7
- 탐방로그
-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산 35-2 3.1공원 계명당고개 대한독립만세탑과 대한군경 순국열사 충령비를 찾아 왔는데 없었다. 그래서 주변 주민분께 여쭤보니, 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고 알려주셨다. 주민께서 알려주신 곳으로 이동하여 온 곳의 GPS상 주소는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산 30-7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계명당고개 대한독립만세탑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52-1-39 / 관리자: 사매면발전협의회 / 건립연도: 2009.11.17.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에 의하여 독립선언서가 선포된 후, 3월 2일 덕과면 이기원, 황석현, 황동주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면의 곳곳에 붙여졌고 이는 면민들에게 3.1운동에 대한 민족적인 당위성과 의의를 주시시켰다. 당시 덕과면장이었던 사매면 대신리 이석기선생은 일제하의 면장직을 부끄럽게 여기고 조선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하여 만세운동 격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3일 덕과면민 500명은 동해골로, 사매면민 300명은 오신리 계명당 고개로 모여 이석기 선생의 선창아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는 군중에게 발포를 하여 이석기선생등 주모바를 체포하였으나, 이성기 등이 다시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4월 4일 남원장날에 남원시장 안에서 수천의 군민이 총궐기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남원의 만세운동은 농촌지역까지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며, 전국적인 3.1만세운동은 일본의 무단통치 종식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등 독립운동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날 계명당 고개에 울려펴진 자주 독립의 함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매면 발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2009년 11월 17일 여기에 만세탑을 건립하였다.
관리번호: 52-1-39 / 관리자: 사매면발전협의회 / 건립연도: 2009.11.17.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에 의하여 독립선언서가 선포된 후, 3월 2일 덕과면 이기원, 황석현, 황동주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면의 곳곳에 붙여졌고 이는 면민들에게 3.1운동에 대한 민족적인 당위성과 의의를 주시시켰다. 당시 덕과면장이었던 사매면 대신리 이석기선생은 일제하의 면장직을 부끄럽게 여기고 조선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하여 만세운동 격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3일 덕과면민 500명은 동해골로, 사매면민 300명은 오신리 계명당 고개로 모여 이석기 선생의 선창아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는 군중에게 발포를 하여 이석기선생등 주모바를 체포하였으나, 이성기 등이 다시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4월 4일 남원장날에 남원시장 안에서 수천의 군민이 총궐기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남원의 만세운동은 농촌지역까지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며, 전국적인 3.1만세운동은 일본의 무단통치 종식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등 독립운동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날 계명당 고개에 울려펴진 자주 독립의 함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매면 발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2009년 11월 17일 여기에 만세탑을 건립하였다.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산 35-2 3.1공원 계명당고개 대한독립만세탑과 대한군경 순국열사 충령비를 찾아 왔는데 없었다.
주변 주민분께 여쭤보니, 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고 알려주셨다.
주변 주민분께 여쭤보니, 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고 알려주셨다.
주민께서 알려주신 곳으로 이동하여 온 곳. GPS상 주소는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산 30-7이다.
三.一公園(삼일공원)
계명당고개 대한독립만세탑
계명당고개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계명당고개의 함성
大韓獨立萬歲(대한독립만세)
大韓獨立萬歲(대한독립만세)
격문
아 동포제군이여!
신성한 단군의 자손으로서 반만년동안 동방에 웅비하는 아 조선민족은 경술년이 원수이다.
금수강산은 식민지도에 출판되고 신성자손은 노예민적에 들어갔다.
여사한 수욕을 수하고 가면목으로 자하의 성조를 보겠느냐?
몽고도 독립을 선언하고 파란도 민족자결을 주장한다.
자에 발분흥기하여 만강의 열성을 다하여 조선독립을 고창하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만세!
아 동포제군이여!
신성한 단군의 자손으로서 반만년동안 동방에 웅비하는 아 조선민족은 경술년이 원수이다.
금수강산은 식민지도에 출판되고 신성자손은 노예민적에 들어갔다.
여사한 수욕을 수하고 가면목으로 자하의 성조를 보겠느냐?
몽고도 독립을 선언하고 파란도 민족자결을 주장한다.
자에 발분흥기하여 만강의 열성을 다하여 조선독립을 고창하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만세!
당시 이석기 덕과면장이 각 면사무소에 보낸 '만세운동참가 취지서'이다.
시유 기미(己未), 오월(吳越)이 동주(同舟)하고 만국이 악수하여 세계 평화의 서광이 조(照)한지라 근유첨위(謹惟僉位) 귀체 익익 청목(淸穆) 경하이외다. 각설, 우생이 십수년간 면장 재직 중 공사 다양 애호하심은 진심난망자야(眞甚難忘者也)라.
연이 현금 20세기 차시대는 문명의 보무(步武)가 정지치 아니한지라 무(無)로써 유(有)하고 허(虛)로서 실하여 작일의 패자(敗者)는 금일의 흥자(興者)요, 석시(昔時)의 약자는 현시의 강자라.
역사가 없는 저 몽고도 독립을 선언하고 미약한 저 파란(波蘭)도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하거든, 신성 자손 아 조선민족이랴!
자에 우생이 면장의 직을 사하고 만강진성(滿腔眞城)을 다하여 조선 독립을 고창(高唱)합니다. 청컨대 첨군자는 불아하기(不我遐棄)하고 배가 혜호(惠護)하심을 무망.
조선 개국4252년 4월, 서기 1919년 4월 구(舊) 남원군 덕과면장 이석기
각 면사무소 어중(御中)
시유 기미(己未), 오월(吳越)이 동주(同舟)하고 만국이 악수하여 세계 평화의 서광이 조(照)한지라 근유첨위(謹惟僉位) 귀체 익익 청목(淸穆) 경하이외다. 각설, 우생이 십수년간 면장 재직 중 공사 다양 애호하심은 진심난망자야(眞甚難忘者也)라.
연이 현금 20세기 차시대는 문명의 보무(步武)가 정지치 아니한지라 무(無)로써 유(有)하고 허(虛)로서 실하여 작일의 패자(敗者)는 금일의 흥자(興者)요, 석시(昔時)의 약자는 현시의 강자라.
역사가 없는 저 몽고도 독립을 선언하고 미약한 저 파란(波蘭)도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하거든, 신성 자손 아 조선민족이랴!
자에 우생이 면장의 직을 사하고 만강진성(滿腔眞城)을 다하여 조선 독립을 고창(高唱)합니다. 청컨대 첨군자는 불아하기(不我遐棄)하고 배가 혜호(惠護)하심을 무망.
조선 개국4252년 4월, 서기 1919년 4월 구(舊) 남원군 덕과면장 이석기
각 면사무소 어중(御中)
계명당 고개의 함성
1818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폭발한 만세운동의 거센 물결이 남원에 이르는 것은 3월 2일 새벽. 이기원, 함석헌, 황동주등의 천도교인들에 의해 교구장 유태홍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가 남원의 요소요소에 게시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덕과면장으로 계시던 사매면 대신리 이석기선생은 우리 남원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결심을 하시고 친조카인 이광수를 서울에 보내어 3.1운동의 배경과 진행 상황을 알아오게 하는 한편, 1919년 4월 3일 사매면민든 도로보수를 명분으로 이곳 계명당고개에 모이게하고, 덕과면민은 식수행사를 명분으로 덕과면 사율리 동해골에 모여 사매, 덕과면민이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하고 대신리 구장 이형기를 비롯하여 이성기, 이용기, 이광수와 관풍리, 오신리 구장들로 하여금 각 부락에 연락하여 면민을 동원하도록 하고 선생은 남원군 각면장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자는 취지문을 보내고, 경고아동포제군(警告我同胞諸君)이라는 격문을 지어 일본에 항거할 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4월 3일 이곳 계명당 고개에 약300여명, 덕과면 동해골에 약 500여명이 모였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이석기면장의 격문낭독을 신호로 사매면민은 계명당고개에서 덕과면민은 동해골에서 미리 준비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던것이 바로 남원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면민들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노도와 같이 사매면 헌병 주재소로 집결하여 항거하였다. 사매, 덕과면민 약 800여명의 위세에 놀란 사매면 헌벙 주재소에서는 남원 헌병청에 연락하여 이날 오후 6시경 완전무장한 일본헌병들과 기마순경등의 총칼앞에 군중은 흩어지고 이석기선생을 비롯 김선량, 이재화, 이승순, 이붕기, 조동원등 주도자들을 포박하여 갔다. 그러나 사매면민과 덕과면민의 의지는 꺽일줄을 몰랐다. 이날밤 이형기를 중심으로 몇몇이 모여 다음날 남원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만세운동을 시작하고 포박해간 이석기면장등을 구출하기로 결의하고 밤을 새워 태극기를 제작하고 각 부락을 돌며 만세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4월 4일 오후 2시 남원 북부시장에 모인 약 2,000여 군중들은 시내를 행진하며 나라잃은 울부짖음을 터트렸으니 계명당 고개와 동해골의 함성은 남원 독립만세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그날의 함성이 계명당 고개에 울려퍼진지 어언 90여 성상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생을 뒤로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찾기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던 우리지역 선열들의 고귀한 넔을 기리고 애국충정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자 오늘 "순군선열의 날"을 맞아 이곳 계명당 고개에 탑을 세우고 그 뜻을 새긴다. 서기2009년 11월 17일
1818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폭발한 만세운동의 거센 물결이 남원에 이르는 것은 3월 2일 새벽. 이기원, 함석헌, 황동주등의 천도교인들에 의해 교구장 유태홍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가 남원의 요소요소에 게시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덕과면장으로 계시던 사매면 대신리 이석기선생은 우리 남원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결심을 하시고 친조카인 이광수를 서울에 보내어 3.1운동의 배경과 진행 상황을 알아오게 하는 한편, 1919년 4월 3일 사매면민든 도로보수를 명분으로 이곳 계명당고개에 모이게하고, 덕과면민은 식수행사를 명분으로 덕과면 사율리 동해골에 모여 사매, 덕과면민이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하고 대신리 구장 이형기를 비롯하여 이성기, 이용기, 이광수와 관풍리, 오신리 구장들로 하여금 각 부락에 연락하여 면민을 동원하도록 하고 선생은 남원군 각면장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자는 취지문을 보내고, 경고아동포제군(警告我同胞諸君)이라는 격문을 지어 일본에 항거할 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4월 3일 이곳 계명당 고개에 약300여명, 덕과면 동해골에 약 500여명이 모였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이석기면장의 격문낭독을 신호로 사매면민은 계명당고개에서 덕과면민은 동해골에서 미리 준비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던것이 바로 남원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면민들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노도와 같이 사매면 헌병 주재소로 집결하여 항거하였다. 사매, 덕과면민 약 800여명의 위세에 놀란 사매면 헌벙 주재소에서는 남원 헌병청에 연락하여 이날 오후 6시경 완전무장한 일본헌병들과 기마순경등의 총칼앞에 군중은 흩어지고 이석기선생을 비롯 김선량, 이재화, 이승순, 이붕기, 조동원등 주도자들을 포박하여 갔다. 그러나 사매면민과 덕과면민의 의지는 꺽일줄을 몰랐다. 이날밤 이형기를 중심으로 몇몇이 모여 다음날 남원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만세운동을 시작하고 포박해간 이석기면장등을 구출하기로 결의하고 밤을 새워 태극기를 제작하고 각 부락을 돌며 만세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4월 4일 오후 2시 남원 북부시장에 모인 약 2,000여 군중들은 시내를 행진하며 나라잃은 울부짖음을 터트렸으니 계명당 고개와 동해골의 함성은 남원 독립만세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그날의 함성이 계명당 고개에 울려퍼진지 어언 90여 성상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생을 뒤로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찾기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던 우리지역 선열들의 고귀한 넔을 기리고 애국충정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자 오늘 "순군선열의 날"을 맞아 이곳 계명당 고개에 탑을 세우고 그 뜻을 새긴다. 서기2009년 11월 17일
사매면 독립유공자
이석기, 이대수, 이태수, 이일기, 강경진, 이용기(이두기), 이형기, 김해근, 이명수, 장동엽, 김행즙, 이범수, 정형구, 문경록, 이병기, 정한익, 유창근, 이석기, 한태현, 이광수, 이성기, 형갑수, 이교준, 이온기, 형광욱
이석기, 이대수, 이태수, 이일기, 강경진, 이용기(이두기), 이형기, 김해근, 이명수, 장동엽, 김행즙, 이범수, 정형구, 문경록, 이병기, 정한익, 유창근, 이석기, 한태현, 이광수, 이성기, 형갑수, 이교준, 이온기, 형광욱
증(소나무)
3.1운동기념공원 조성
전주이씨 종중(상신)
함양오씨 종중(관촌)
2011.3
3.1운동기념공원 조성
전주이씨 종중(상신)
함양오씨 종중(관촌)
2011.3
3.1기념탑 준공에 즈음하여!
지금도 조용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들리는 듯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시퍼런 일제의 총칼앞에 목숨을 버릴 각오로 외치던 함성이! 지금도 이곳 계명당고개 이 길목에 메아리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메이라를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무심히 이 길목을 지나 다녔습니다.
늦었지만 이곳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면민의 마음이 모여 사매면발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3.1만세운동기념탑을 건립키로 하고 하대식 도의원의 도움으로 도비 6,000만워을 지원받아 거사가 있은지 90년만인 2009년 11월 17일에 기념탑 준공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기념탑을 중심으로 한 이곳을 3.1공원으로 조성하고 이곳을 오가는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 또 그 후손들이 잠시 쉬면서 그날을 생각하며 선열들의 애국충정의 교훈을 본받아 크게는 애국의 길을 생각하며 작게는 면민이 화합하고 단결하여 풍요롭고 인정 넘치는 고장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 사해면발전협의회 - 2010년 12월 일
지금도 조용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들리는 듯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의 함성!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시퍼런 일제의 총칼앞에 목숨을 버릴 각오로 외치던 함성이! 지금도 이곳 계명당고개 이 길목에 메아리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메이라를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무심히 이 길목을 지나 다녔습니다.
늦었지만 이곳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면민의 마음이 모여 사매면발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3.1만세운동기념탑을 건립키로 하고 하대식 도의원의 도움으로 도비 6,000만워을 지원받아 거사가 있은지 90년만인 2009년 11월 17일에 기념탑 준공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기념탑을 중심으로 한 이곳을 3.1공원으로 조성하고 이곳을 오가는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 또 그 후손들이 잠시 쉬면서 그날을 생각하며 선열들의 애국충정의 교훈을 본받아 크게는 애국의 길을 생각하며 작게는 면민이 화합하고 단결하여 풍요롭고 인정 넘치는 고장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 사해면발전협의회 - 2010년 12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