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유적지 남원성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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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197-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전북 남원시 동충동 197-1 舊남원역.
진눈깨비가 꽤 굵은 눈으로 바뀌었다.
민족정신 교육의 현장 남원성 북문 터 구 남원역
이곳은 남원성 4대문 중 북문(공진루)터 앞이다. 정유재란(1597년) 남원성 전투당시 3대문은 명군이 지키고 있었고 이곳 북문은 전라병사 이복남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남원성에서는 민.군.관 1만여명이 왜군 5만6천여명을 맞아 (음)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3대문이 무너지고 성민들이 북문으로 몰려 마지막 항전을 하다가 1만여 순절자 중 대부분이 순정하신 현장이다. 이곳에서 치명타를 입은 왜군은 정상적인 진격이나 전투를 하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결국 정유재란도 패하게 된다. 일제는 이곳에 남원역사를 만들고 만민의총과의 사이를 프래트홈으로 갈라놓은 만행을 저질러 순절현장을 후손들이 짓밟고 다니게 했으며 선열들의 얼과 넋을 갈라놓고 으깼다.


동학혁명 유적지 남원성 북문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원은 전라좌도 농민군의 대도회소와 집강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방아치 패전후 세력이 급격하에 떨여져 남원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승세를 탄 운봉,남원 연합의 민보군이 (음)11월 18일 남원성을 공격하였고 다시 패전한 농민군이 이 북문을 통하여 물러나면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동학혁명 유적지 남원성 북문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원은 전라좌도 농민군의 대도회소와 집강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방아치 패전후 세력이 급격하에 떨여져 남원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승세를 탄 운봉,남원 연합의 민보군이 (음)11월 18일 남원성을 공격하였고 다시 패전한 농민군이 이 북문을 통하여 물러나면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남원역의 역사

1932.10.1
남원 <> 전주 간 개통

1933.10.15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50.10.15
미군 공습으로 남원역사 소실

1956.7.27
남원역사 복구

1986.12.8
현재 건축물로 개축

2004.8.5
신역으로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