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22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전에는 초가집이었는데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이종희 장군(General Lee Jeong-hee)
항일 독립군 이종희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1987년에 세운 추모비와 생가터가 복원되어 있다. 장군의 호는 남정이며 본관은 전주로서 도평군의 18세손으로 1890년 4월 19일 김제군 금산면 용호리 66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의 뛰어남을 인정받았으며, 이 고장 원평에서 청년지하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도 이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3.1일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망명한다. 그 후 조선의열단에 들어가서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1922년 3월에 상해 황포탄에 가서 일본군 육군대장을 저격하려다 실패하여 가까스로 피신하게 된다. 여러 단체와 직책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광복군에서도 지대장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조선 독립 후 돌아오던 길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금산면 구미마을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7년 5월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항일 독립군 이종희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1987년에 세운 추모비와 생가터가 복원되어 있다. 장군의 호는 남정이며 본관은 전주로서 도평군의 18세손으로 1890년 4월 19일 김제군 금산면 용호리 66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의 뛰어남을 인정받았으며, 이 고장 원평에서 청년지하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도 이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3.1일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망명한다. 그 후 조선의열단에 들어가서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1922년 3월에 상해 황포탄에 가서 일본군 육군대장을 저격하려다 실패하여 가까스로 피신하게 된다. 여러 단체와 직책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광복군에서도 지대장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조선 독립 후 돌아오던 길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금산면 구미마을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7년 5월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금산면 용호리 663 원 생가터에 세워져 있던 안내판도 이곳으로 이동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