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96-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풍락헌 옆 일송 장현식 선생 고택. 이 고택에는 사연이 많다. 장현식 고택은 원래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96-1 서도마을에 있던 인동장씨 진안공파 종가 고택이었다. 일송(一松) 장현식(張鉉植·1896~1950) 선생은 전북 김제에서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로 전라북도 제2대 도지사를 지내기도 한 분이다. 일제 시대에 3.1운동, 조선어학회 자금을 조달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독립유공자 일송 장현식 선생은 6.25때에 북으로 납북되어 가시고, 고택은 세월이 가면서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다. 장현식 선생의 아들 장홍씨가 김제시, 문화재청에 도움을 청하였으나, 예산을 이유로 아무것을 할 수 없었고, 전주시에 기부하므로써 이곳으로 이전되게 된 것이다.
일송 장현식 선생의 묘소는 북한 재북인사묘에 있다고 한다.
고택
제2대 전라북도 지사를 역임했던 김제출신 독립운동가 장현식선생(1896.9.17~. 한국전쟁 때 납북)이 1932년에 건축한 근대 한옥이다. ..후략...
제2대 전라북도 지사를 역임했던 김제출신 독립운동가 장현식선생(1896.9.17~. 한국전쟁 때 납북)이 1932년에 건축한 근대 한옥이다. ..후략...
본래 고택이 있었던 김제 금구 서도리는 갑오농민군들의 최초 집회지인 원평읍과 지척인 곳이었음에도 온전했고, 한국전쟁 때도 모악산의 빨치산들이 금구읍 내의 면사무소와 우체국 등을 모두 불질렀지만 장씨 집들은 피해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만석꾼이면서도 이웃을 위해 베푸는 등 대대로 덕을 쌓아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현식 고택은 인동장씨 진안공파의 종가로, 남원 호음실의 박씨 집과 함께 여행객들은 부담없이 여장을 풀고 쉬어 갔다고 한다. 거의 사흘마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과객 접대에 힘써, 그들 사이에서 "노잣돈 떨어지면서도 장씨 집에 간다."는 말이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