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모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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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457-1
탐방로그
문형모 의병장의 묘소는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457-1(상전길 61, 65사이) 양주마을 야산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 전화를 하여 알 수 있었다.

전라북도 옥구(沃溝) 출신이다. 을사조약이 일제의 책동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에서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사반대를 위한 의병운동이 거국적으로 전개되었다. 1906년 당대의 거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거사하여 전북 태인(泰仁)지방을 거점으로 창의하였다. 이 때 많은 호남지방의 유림 인사들이 면암의 의거에 동조하였다. 문형모 역시 면암의 의진에 소속되고자 찾아뵈었다. 이 때 영광의 김병섭(金秉燮)·전주의 최학엽(崔學燁)·유예근(柳禮根) 그리고 익산의 박이환(朴 桓) 등도 아울러 소속되었다. 이후 문형모는 면암 의진의 길지 않았던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전과를 올렸다. 의병활동이 종식된 후 1914년에는 대한독립의군부의 호남 통신국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1918년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사 우당 문공 정인지묘
우당 문정인선생은 고종10년에 이고장 임피면 월하리에서 고 호영씨 비 담양전씨의 차남으로 태어나셨다. 휘는 형모 본관은 남평 강성군 삼우당 휘 익점선생의 17대손이시며 참의공 휘 영선생의 15대손이시고 진사 휘 현도선생의 현손이시다. 천자총명하시여 학문이 조숙하시고 성품이 강직하시며 정의로써 사람을 포용하는 덕망이 있으셨다. 을사보호조약당시 왜적의 침략으로 국운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선생은 멸실보국하실것을 결심하시고 동지 이규홍 박이환과 더부러 돈헌 임병찬선생및 면암 최익현선생과 혈맹으로 의거를 도모하시고 의병부대를 편성 호남의군부 통신국장 겸 참모장으로 항일하시다. 왜제가 현상금을 걸고 검거코자하므로 만부득기 만조루 망명하시어 항일 암약하시다가 71세시에 8.15해방을 맞이하였으며 1951년에 서거하시니 향년 77세이시였다. 샘영보다 충의를, 가정보다 국가를 더욱 중히 여기신 선생의 충용정신과 공훈를 영원히 기르기 위하여 정부는 1980년 8월 15일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산고수장에 비길 선생의 공훈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여기 묘비를 건립하나이다. 유적비 서황후 녹서편 건립
단기 4317년 갑자 9월
문형모 의병장의 묘소는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457-1(상전길 61, 65사이) 양주마을 야산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 전화를 하여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