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79-6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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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최전구는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의 의진에 입대하여 시종을 함께 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자 일제침략자들을 10대죄목(十大罪目)으로 성토하다가 체포되어 경남 욕지도(欲知島)로 유배되어 1년간 유형을 치렀다. 1914년 2월에는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가 결성되자 특파내외순찰사(特派內外巡察使)에 임명되어 계속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正憲大夫義軍府巡察使昭慶園 參奉智隱崔公諱銓九追慕碑
정헌대부 의군부 순찰사 소경원참봉 지은 최공 휘 전구 추모비
정헌대부 의군부 순찰사 소경원참봉 지은 최공 휘 전구 추모비
근안컨데 공의 휘는 전구요 자는 우서요 호는 지은이니 전주최씨로 철종 신해 6월 5일 성송면 조동에 출생하여 문장이 숙취하야 면암의 고제가 되다. 고종 경자에 소경원 참봉에 임하자 왜구가 조국을 침하야 소위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노예의 굴레를 덮어 씌우자 면암과 상모하여 의거타가 병오에 선생과 대마도에 유수하였고 경술에 국치을 당하자 놈들이 우리 국가를 기만찬탈하였다는 16대죄목을 들처 일분군장에 성토하고 피인되여 6일 단음하여 해금하자 왜군의 복제를 우리 민족에 강행하니 또 구수의 부당복이란 장서를 선포하고 욕지도에 유수
되었고 갑인에 경향간 동지들과 조국광복단을 조직하여 의군부 순찰사로 활동타가 정사에 피수되여 영종도에 유수하였으며 무오에 고종이 빈천하심을 통분하사 또 동지들과 광복단을 도성타가 피검되어 9일 단식으로 해검하쟈 제3일에 또 구검하니 서사코 단식을 하여 5일만에 다시 귀가하야 추산봉에 망오대을 설치하고 조석 통곡을 부모의 애사와 여히 하면서 석굴에 은하야 국권을 회복하여 국통을 계승하자는 상소를 하고 또 소로되였으며 병인에 순종이 붕하시자 전상과 여히 거애하고 순종이 무사하니 입사하여 국맥을 전하자는 소를 황후에게 상하고 또 구검을 당하였으니 전후 10차의 피로와 고해절도의 3차 유수와 수십년을 석굴에서 무적무세히 혹정가책과 싸우며 일편 조선을 보존하였으니 기간 고초야 었지 일시의 치명에 비하며 일월로 쟁광하는 고절이야 었지 청사에 찬연치 안할손가 오호라 국권이 광복한 이날에 공의 영영은 지하에서 춤추며 기뻐하실것을 생각하면서 공평의 대개을 기하야 후일의 사자가 되기을 바라나이다.
조국광복 21년 을사 삼춘지망일
조국광복 21년 을사 삼춘지망일
GPS상의 주소는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79-6 에서 추모비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