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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산32-1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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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산 32-1에서 만난 동학농민군 진격로 '호산봉(여시뫼봉)과 1차봉기 모의지' 안내판
이곳은 오래 전부터 찾았었지만 위치를 확정할 수 없었는데 고창군에서 알려주셨다.
이 부근은 고개도 없는 평지인데 과실재로 되어 있다. 동학농민군 진격로에 포함된 곳이다.
길의 이름이 왕제산로 이다.
이 외에도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녹두로, 전봉준로 등 동학혁명과 관련된 길 이름들이 있었다.
동학농민군 진격로를 따라가는 길에서 잠시 벗어나서 애국지사 김영완산생 묘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갈림길에서 동학농민군 진격로 과실재 표지석을 만났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호산봉(여시뫼봉)과 1차 봉기 모의지 / 예향천리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호산봉(여시뫼봉)과 1차 봉기 모의지 / 예향천리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호산봉은 순 우리말로 여시뫼봉이다. 또는 왕재산이라고도 한다. 호산봉에서 보면 낮은 산 같지만 반대편은 지대가 낮아 산이 높아 보이고 또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탁트인 전망이 장성 영광 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무장읍성을 접수하고 3일동안 머물며 휴식을 취할때 농민군의 일부가 호산봉에 진을 치고 휴식과 재정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호산봉 남쪽 아래 마을이 신촌인데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서인수 등 13명이 김성칠 접주집에 회동 손화중을 설득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때 김성철 접주는 그 준비 공작금으로 쌀 50석을 내놓았으며 그의 아들 김홍섭은 전봉준 장군 수행원이 되었다. 여기에서 출발한 농민군은 4월 23일 장성 황룡천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京軍)을 크게 물리치고 다음날 전주성을 향해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이곳부터 남도에서 올라오는 큰 길과 합류하게 된다. 말무덤(큰무덤) 뒷편의 오솔길이 영광 함평 목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또한 오솔길을 가다보면 오른쪽 산밑에 바가지 샘이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다. 농민군들이 숙영할때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철 접주의 집자리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호산봉은 순 우리말로 여시뫼봉이다. 또는 왕재산이라고도 한다. 호산봉에서 보면 낮은 산 같지만 반대편은 지대가 낮아 산이 높아 보이고 또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탁트인 전망이 장성 영광 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무장읍성을 접수하고 3일동안 머물며 휴식을 취할때 농민군의 일부가 호산봉에 진을 치고 휴식과 재정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호산봉 남쪽 아래 마을이 신촌인데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서인수 등 13명이 김성칠 접주집에 회동 손화중을 설득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때 김성철 접주는 그 준비 공작금으로 쌀 50석을 내놓았으며 그의 아들 김홍섭은 전봉준 장군 수행원이 되었다. 여기에서 출발한 농민군은 4월 23일 장성 황룡천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京軍)을 크게 물리치고 다음날 전주성을 향해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이곳부터 남도에서 올라오는 큰 길과 합류하게 된다. 말무덤(큰무덤) 뒷편의 오솔길이 영광 함평 목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또한 오솔길을 가다보면 오른쪽 산밑에 바가지 샘이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다. 농민군들이 숙영할때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철 접주의 집자리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이 부근은 고개도 없는 평지인데 과실재로 되어 있다. 동학농민군 진격로에 포함된 곳이다.
길의 이름이 왕제산로 이다.
이 외에도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녹두로, 전봉준로 등 동학혁명과 관련된 길 이름들이 있었다.
이 외에도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녹두로, 전봉준로 등 동학혁명과 관련된 길 이름들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군 진격로 / 과실재
소숙재 ↔ 무장읍성 / 14-3
소숙재 ↔ 무장읍성 / 14-3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산 32-1에서 만난 동학농민군 진격로 '호산봉(여시뫼봉)과 1차봉기 모의지'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