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9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군 훈련장
앞선 탐방 시와 비교하니 동학농민혁명 기념탑 안내석 내용 중 동학농민군 진격로가 바뀌었다.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는 1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한 곳이다.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뜻하는 서학과 대비가 된다는 의미의 동학은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이다. 고부 농민 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관군의 소탕을 피해 무장의 대접주 손화중을 찾아, 함께 손을 잡고 농민들을 모아 훈련시켜 봉기했던 곳이 바로 이곳 '당뫼'이다. 1894년 3월 20일경에 재봉기하면서 밝힌 '무장포고문'에는 봉기의 이유와 목적 등이 담겨있다. 이는 세상에 거대한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한 19세기 후반 지역적 민란의 성격을 뛰어 넘어 반봉건, 반침략을 지향하는 개혁운동이자 전국적 항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사회에 마지막 결정타를 입혔으며, 열강의 침략에 대한 이사아 민중의 저항의지를 확연히 보여준 반제국주의 운동이다. 이 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뒤의 항일의병운동과 3.1독립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당뫼 : 고창 공음의 구암 또는 구수라는 마을앞에는 큰 당산나무가 있었다하여 마을 이름을 '당뫼'라 불렀다.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는 1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한 곳이다.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뜻하는 서학과 대비가 된다는 의미의 동학은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이다. 고부 농민 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관군의 소탕을 피해 무장의 대접주 손화중을 찾아, 함께 손을 잡고 농민들을 모아 훈련시켜 봉기했던 곳이 바로 이곳 '당뫼'이다. 1894년 3월 20일경에 재봉기하면서 밝힌 '무장포고문'에는 봉기의 이유와 목적 등이 담겨있다. 이는 세상에 거대한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한 19세기 후반 지역적 민란의 성격을 뛰어 넘어 반봉건, 반침략을 지향하는 개혁운동이자 전국적 항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사회에 마지막 결정타를 입혔으며, 열강의 침략에 대한 이사아 민중의 저항의지를 확연히 보여준 반제국주의 운동이다. 이 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뒤의 항일의병운동과 3.1독립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당뫼 : 고창 공음의 구암 또는 구수라는 마을앞에는 큰 당산나무가 있었다하여 마을 이름을 '당뫼'라 불렀다.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살기 좋고 평화로운 고창 들녘과 농민들
동학농민군의 무장객사 휴식과 재정비
당뫼골(당뫼마을) 민요
어디만치 왔냐 솔갱이 떴다 / 어디만치 왔냐 말(마래마을) 많다 / 어디만치 왔냐 당뫼골 멀었다 어디만치 왔냐 / 어디만치 왔냐 들갱변 떴다 / 어디만치 왔냐 일송기(봉기할 장소에 자리한 소나무) 떴다 / 어디만치 왔냐 송대장(송문수 장군) 쩌렁쩌렁 / 어디만치 왔냐 구곡(九谷 구수마을) 고랑 둥둥 / 어디만치 왔냐 어칠부칠(도착했음) 알림
어디만치 왔냐 솔갱이 떴다 / 어디만치 왔냐 말(마래마을) 많다 / 어디만치 왔냐 당뫼골 멀었다 어디만치 왔냐 / 어디만치 왔냐 들갱변 떴다 / 어디만치 왔냐 일송기(봉기할 장소에 자리한 소나무) 떴다 / 어디만치 왔냐 송대장(송문수 장군) 쩌렁쩌렁 / 어디만치 왔냐 구곡(九谷 구수마을) 고랑 둥둥 / 어디만치 왔냐 어칠부칠(도착했음) 알림
중간 중간에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는 방향 안내판이 서 있었다.
기포지 옆 개울을 따라서 첫번째 목적지는 두암저수지 부근 정자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94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를 찾았다.
고창군 관광안내도
동학농민혁명군의 진격로
①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②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③ 전봉준 생가터 ④ 무장현 관아와 읍성 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⑥ 왕제산(여시뫼봉) ⑦ 손화중 도소 ⑧ 고창읍성 ⑨ 손화중 피체지 ⑩ 흥성동헌
①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②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③ 전봉준 생가터 ④ 무장현 관아와 읍성 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⑥ 왕제산(여시뫼봉) ⑦ 손화중 도소 ⑧ 고창읍성 ⑨ 손화중 피체지 ⑩ 흥성동헌
동학농민혁명군은 1894년 3월 20일(음력)에 무장에서 기포한 이후 구수내 → 소속재 → 과실재 → 무장읍성 → 하마등 → 첨금정바위 → 월증 → 끄렁재 → 사신원 → 인천강(임낸보) → 굴치재 → 맹감다리 → 석호 → 사.후포 → 목우 → 줄포 → 눌재를 거쳐 곧 바로 고부관아를 들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