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옥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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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219-5
탐방로그
손승옥은 1919년 4월 11일 전남 해남읍 장날의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하였다. 해남읍에서는 4월 6일 해남보통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이를 전후하여 김동훈(金東勳) 등 청년들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손승옥은 김동훈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전해 듣고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4월 11일 정오경, 그는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해남로 큰 길거리로 옮기고, 당목으로 만든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어 신호하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장터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는 도중, 해남보통학교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가며 독립만세를 크게 불렀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영향을 받은 해남보통학교 학생들도 동참하여 시위대열은 1천여 명에 달하였다. 어린 학생들의 시위대 합류는 군중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이들은 장터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무렵 일경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검거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이때 손승옥도 일경에 체포되어 4월 1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송헌 밀양손공 형상지묘
공의 휘는 형상이요 자는 승옥이며 호는 송헌으로 밀양손씨이다. 그 선세는 신라조 좌명원훈육부장 추대 문의왕 휘 순은 시조요 고려조에 광리군 휘 긍훈은 도통군무로 위훈을 세워 관은 삼중대광사도요 기후세 구규 조 탄혁하고 보불이 위황하였다. 누전하여 조복사 휘 구는 명종조에 청백리에 수송하였고 4전하여 휘 윤은 충령왕조에 등문과 충선 충숙 충혜 4조를 역사하여 성적이 지대하였으며 북으로 여진족을 정벌 전승비가 있으며 누전이 휘 경검 호 송계당은 조선태종조에 완절불기명으로 적간보성 나주하여 후언하니 시위낙향조이시다. 조고 휘
는 만철이요 증조 휘는 용후이니 학덕이 구존하였고 조는 석공이요 별호는 거사이니 구은덕불임함 이덕생으로 세세전가하다. 고 휘는 훈모이니 행 사헌부 별찰이요 비는 선인 경주정씨이며 생 고 휘는 석정이요 비는 진주정씨이시다. 공은 고조 무술년 1898년 8월 9일에 출생하여 천자순후하고 효우비지하여 부무에게 효도하고 명제간에 우애하여 오수숙음이 훈고질창하고 재질이 순오하며 대성의 이국이 있었으나 시제불선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때마침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혹은 투옥 혹은 도피생활로 세월을 보내다가 왜경의 추적에 못견디어 일본으로 망명광복10년전에 교국하여 수신제가하다 해남읍에서 대서업무를 관장하여 민원을 처리하시였다. 정사 1977년 1월 20일 79세에 서거하니 묘는 진산리 신이부락 후산 계좌요 배는 순천 김성범의 녀로 유덕하시었다. 1890년 경자 3월 4일 출생 1993년 12월 5일 93세에 졸하시니 묘는 쌍조이다. ... 후략
송파 일양손공 형철(자 윤옥)지묘
손승옥 선생의 동생되시는 분인 것 같다.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219-5 애국지사 손승옥의 묘소를 찾았다.
獨立有功者 密陽 孫公 炯祥(升玉) 之墓(독립유공자 밀양 손공 형상(승옥) 지묘)
獨立有功者 密陽 孫公 炯祥(升玉) 之墓(독립유공자 밀양 손공 형상(승옥) 지묘)
서기 2007년 3월 20일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