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4.8만세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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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135
탐방로그
2013년에 찾았었던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135 문장3.1의거기념탑 옆에 기미4.8만세운동기념관이 새롭게 건립되어서 다시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135 문장3.1의거기념탑옆에 기미4.8만세운동기념관이 새롭게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겠습니다
기미 4.8만세운동 기념관
1919년 4월 8일 문장장터에 울려 퍼진 태극기 물결
1919년 4월 8일 문장장터에 울려 퍼진 태극기 물결

매년 4월 8일 이곳 해보면 문장3.1만세탑 광장 등지에서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숭고한 희생정신을 실천하신 애국지사 24인 영령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추모식과 재현행사를 하고 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1852~) 승하. 덕수궁에서 일제 하수인에게 돌살(일설)
고종의 사망을 두고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항간에 퍼졌다. 그날 고종의 병세가 위중하여 이완용이 궁에 머물며 숙직을 하였으며 궁전의 나인을 시켜 고종에게 식혜를 올렸든데 식혜를 마신 후 복통으로 급서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확산되자 일제는 ≪매일신보≫에 기사를 내고 고종이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전하고 일본 신도의식에 따라 강제로 장례를 치뤘다. 고종의 사망으로 항일감정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고종의 장례일인 3월1일(인산일)에 맞추어 3.1운동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1919년 2월 27일 민족대표 33인 독립선언문 인쇄하여 배포하다.
최남선이 초안을 잡고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재동 최린의 집에서 독립선언문에 서명, 이종일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1차 2만5천부, 2차 1만부 등을 인쇄하여 전국 주요인사들에게 배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후 전국에 걸쳐 3.1만세 운동이 일어나다.
오후 2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자 일제의 보병, 기병이 출동하여 지도자와 주도자 134명이 연행됨. 한편 남녀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움직여 경신학교 학생 정재용이 기미독립선언서를 파고다 공원에서 낭독하고 거리로 나가 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상경한 일반 민중들이 시위대와 가세하여 수십만 인파가 모여 들어 시위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여기에 일본 헌병과 기마부대가 시위대를 폭압적으로 진압하려 했으나,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다가 오후 6시에 자진 해산했다. 다음날 조선총독부는 전 병력을 동원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을 마구 연행했는데 이날 하루에만도 무려 1만여명이 체포되었다.

이후 6개월에 걸쳐 총 참가자 200여만명이며,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일 ~ 5일 낙영재에서 태극기와 죽창을 준비하다.
4월 1일 학다리 역전에서 2일에는 나산면사무소앞, 3일에는 손불, 5일에는 엄다에서 산에 봉화를 피우면서까지 만세운동이 있었으나 큰 위력을 보이지 못하고 함평에서 온 이인행 열사가 문장사람 이윤상을 만나고 월야사람들과 만나 4얼 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한문서당 낙영재에서 김기택, 장효섭, 정용섭, 이윤상, 정재남등 24여명과 함께 만세운동을 기획하여 극비리에 몇일전부터 그날 투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태극기 1천개와 김기택의 형 김기봉의 대밭의 대나무를 이용 죽창과 격문을 낙영재와 영사재에서 만들고 정재식(재남의 아우)을 통해 인근에 격문을 보내 중의를 모으는데 힘썼다.

1919년 4월 8일 독립만세 소리가 문장장터에 메아리치고 태극기가 물결치다.
거사 전 날 밤인 4월 7일에는 마을사람 십수명이 태극기를 더 만들어 밤늦게 문장시장 근처 요소요소에 운반하여 숨기는 등 거사를 위한 면밀 주도한 일이 벌어진다. 4월 8일 아침에는 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이 거리 거리에 배치되어 민중들에게 취지를 알리고 태극기와 죽창을 나누어 주고 오후 2시까지 시장에 모이도록 하였다. 김기택, 정재남, 이윤상, 장효섭, 정용섭등이 시장에 나온 대중을 선동하니 일제히 봉기 독립만세 소리가 시장에 메아리 치고 태극기가 물결쳤다. 이어 일본 경찰 문장주재소와 병참소를 기습 습격하고 일진은 함평 쪽으로 일진은 영광쪼그로 일진은 송정리쪽으로 행진했다. 영광.함평.장성.나주에서 지원온 일본경찰대와 헌병이 총검으로 대오를 해산시키려 하였으며 구밀교 공사를 하던 일본인 잡역부 10여명이 쇠망치를 휘두르며 대오에 뛰에들어 거리는 곳곳에서 피로 물들게 하였다.한편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던 김기택이 헌병들에게 구타 검속되어 가자 이윤상, 장효섭등이 경찰 주재소앞에서 애국청년 석방하가고 요구했으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왜놈들은 오히려 폭력을 행사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만세운동은 계속되었고 끝내 총검앞에 해산되었는데 죽창을 든 일부 청년들이 일경과 대치하며 많은 피해 사례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때 주모자 20명이 당일 검속되고 그중에서 김기택(징역1년), 이윤상(징역6월), 장효섭(징역8월), 정재남(징역6월), 정용섭(징역8월)은 실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15명은 불기소 처분되다.
독립선언문(해석)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 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 며 ,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 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 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 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 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 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 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 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 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님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님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 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님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처음부 터 우리 민족이 바라지 않았던 조선과 일본의 강제 병합이 만든 결과를 보라. 일본이 우리를 억누르고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 로 꾸민 통계 숫자에 따라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이 생겨나고 있다. 과감하게 오랜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또한 울분과 원한에 사무친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이는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판 가름하는 중심인 사억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 명하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 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를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인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내는 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별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 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 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세가지 약속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대한독립만세!!
문장 기미4.8만세운동 애국지사 24인

김기택 이윤상 장효섭 정재남 정용섭
이인행 김원준 김여옥 김용현 김재곤
모양춘 모재명 민정태 이계동 이인덕
이상준 이양범 윤의병 장덕환 장영안
장태중 정재식 주승환 최준달
文場 三一 萬歲塔(문장 3.1 만세탑)
文場 三一 萬歲塔(문장 3.1 만세탑)
文場 三一 萬歲塔(문장 3.1 만세탑)
함평 문장장터 4.8 만세소리
겨레여 겨레여 자주독립의 높은 기개 꺾을 수 없었기에 쇠 녹여 불덩이 일렁이듯 이글이글 타는 눈빛으로 일제에 항거 목숨 걸고 조국을 위해 만세를 불렀노라.
만세소리 조국의 힘이 되었노라. 만세소리 조국의 희망이이 되었노라. 우국열사들이여. 그 뜻 받들어 우리 굳게 뭉치고자 오늘 그 뜻 새겨놓으니 영원히 빛나소서. 나라의 빛이 되소서.
취지문
이곳 우리 문장은 1919년 4월 8일 장날을 택하여 이인행 외 23명의 열사 주도하에 이기환 김재순 이돈동 등 수 많은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하늘 높이 외치며 왜놈의 헌병과 맨 주먹으로 싸워 선혈을 흘린 독립무장의 현장이다. 이에 이 민족의 피맺힌 분노의 불길은 함평군 일원으로 퍼져 독립만세를 외치던 투사들은 악랄한 왜병의 총칼에 끌려가 투옥 옥사 고문치사 당하였으니 이 어찌 원통하고 슬프지 않으랴. 오호...
민족제단에 목숨바친 열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드디어 조국광복 되었으니 이 거룩한 거사야말로 청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도다.
함평군민은 순절하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길이 후손들에게 전승시키고자 뜨거운 정성을 모아 이 탑을 세우다.
서기 1989년 3월 1일 함평군민 일동
3.1기념탑건립성금 방명록(1구좌 5만원)
열사 24인의 이름을 새겨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