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면 충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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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371-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정윤면은 전라남도 함평(咸平)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거의하였다. 처음에 그는 기삼연(奇參衍) 의진에 입대하여 활약하였고, 후에 김태원(金泰元) 의병장 휘하에서 의병으로 많은 전투에 참전하여 활약하였다. 그 중에서 나주(羅州) 영산포(榮山浦) 전투와 광산군(光山郡) 본량면(本良面) 어등산(魚登山)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초 의병장 기삼연과 김태원이 전사하자 나머지 의병을 규합하여 재정비하고 계속하여 재기할 것을 도모하던 중 적군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었다. 1908년 2월 11일 나주 거평방(居平坊)의 산기슭에서 적에게 살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공의 휘는 윤면 호는 인재이시고 본관은 나중이시다. 문정공 설재선생의 22세손으로 금은 채환공의 다섯형제중 장남이신바 공은 1851년 4월 22일 현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석지마을에서 태어나 일찌기 송립재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가훈을 충효로 삼고 구한말 식지면 집강(현 나산면장)을 지내셨다. 전라남도지 절의록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공은 소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매 그 비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연히 일어나시어 죽봉 김태원과 함께 장성의병장 성재 기삼연선생 휘하에 들어가 군자금조달등을 관장하면서 여러 전투에 참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다. 다시 김태원부대가 창설되자 그 선봉으로 나주 남산전투등 각처의 싸움에서 종황무진으로 활약하셨으며 광산군 어등산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크게 패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중 적의 기습으로 생포되시어 갖은 악형에도 굽히자 않으시고 끝내 충절을 지키시다가 나주 거평제(현 문평면) 갈마지 뒷산에서 천추의 한을 품은채 왜군의 흉탄에 장열히 순국하셨으니 1908년 2월 11일이다. 이렇듯 공은 숭고한 애국정신으로 싸우시다가 순절하였음을 정부에서는 크게 찬양하고 198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건국공로표창이 추서됨으로 공의 영혼을 다시 위로하고 살신성인하신 그 충절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그 사실을 이 비에 새긴다.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371-5 석지버스정류장 옆 두 분의 애국지사 사적을 찾아왔다.
정윤면 선생의 충절비와 정기연 선생의 기적비였다.
애국지사 정공 윤면 충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