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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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599
탐방로그
장흥군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 역사문화자원개발사업의 첫 단추로 해동사 애국탐방로 개설을 완료했다고 한다. 해동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순국 추모제(3월 26일)가 열리는 곳이다. 장흥군은 2023년까지 총사업비 70억원을 투입해 후손들에게 국가관과 민족관을 고취시키는 역사교육공간 마련을 위해 안중근 의사 역사문화자원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장한 아들아 보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옮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세상에 나오너라. - 안중근에게 쓴 마지막 편지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본명: 조성녀)
전국 유일의 안중근 의사 사당 해동사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599 장흥군 안중근 의사 사당 해동사를 찾았다.
해동사 바로 앞에 주차장도 조성되어 있고, 길, 안내판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해동사(海東祠)
안중근에게 쓴 마지막 편지
장한 아들아 보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옮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세상에 나오너라.
- 조 마리아 여사([1862~1927] (본명: 조성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1907 국채보상의연금 납입, 1926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정위원
해동사 | 海東祠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3월 26일에 추모 제향을 봉행하는 국내 최초 유일의 사당이다.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흥군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1955년 장흥지역 죽산 안씨 문중 사당인 만수사(萬壽祠) 부지 내에 건립되었다. 유림 안홍천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동명월(海東明月)의 휘호를 받아 현판을 걸고 해동사로 명명하였다. 해동은 우리나라를 뜻하고, 명월은 밝은 달이니, 대한민국을 밝게 비추는 곳이라는 뜻이다. 1955년 10월 27일 위패 봉안식에는 딸 안형생과 5촌 조카인 안춘생이 영정사진과 위패를 모시고 참석하였다. 이후 1996년 만수사 아래 터를 마련하고, 순국 90주년 2000년 현재의 3칸 팔작지붕 건물로 다시 지었다. 안중근 의사의 본관은 순흥이며,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 선생의 26대손이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성균관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러시아군대의 군레를 받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 되었다.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1910년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순국 하였다.
해동사(海東祠)
관리번호: 50-1-51 / 명칭 : 안중근의사 사당(해동사) / 관리자: 안중근의사 기념 사업회 / 소재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599번지 일원
○ 해동사는 안중근의사의 영정(影幀)과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매년 음력 3월 12일에 추모 제향(祭享)을 봉행하는 국내 최초 유일의 사당이다.
○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는 정황을 안타까워하며 장흥군을 비롯한 도내향교의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1955년 만수사 부지 내에 건립되었다. 이후 유림 안홍진옹께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동명월(海東明月)(대한민국을 비추는 곳이라는 뜻)의 휘호(친필)를 받아 현판을 걸고 해동사(海東祠)로 명명(命名)하게 되었다.
○ 안중근 의사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유학자이신 문성공(文成公)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의 26대손이며, 1879년 9월 2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성균관(成均館) 진사(進仕)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으며, 하얼빈 역두에서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저격시키고 의연히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조국 독립과 동양평화의 한을 품고 순국하셨다.
문화재 해설사도 상주를 하고 있었다.
海東明月(해동명월)
해동사 | 海東祠
해동사는 안중근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양력 3월 26일에 추모 제향을 봉행하는 국내 최초 유일의 사당이다. 해동사는 안중근의사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여 장흥군 유림과 죽산안씨문중의 발의로 1955년 만수사 부지 내에 건립하게 되었다. 유림 안홍천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동명월(海東明月)의 호휘를 받아 현판을 걸고 해동사로 명명하게 되었다. 위패 봉안식에는 딸 안현생과 5촌 조카인 안춘생이 영정사진과 위패를 모시고 참석하였다. 안중근의사의 본관은 순흥이며,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문성공 회헌 안향 선생의 26대손이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성균관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러시아군대의 군례를 받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되었다.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1910년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