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황룡전적지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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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356
탐방로그
장성 황룡전적지비는 1894년 4월 23일, 봉건의 압제와 외세의 핍박을 깨치고자 반봉건의 제폭구민과 반외세의 척양척왜를 들고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서울에서 파견된 경군을 무찌른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에 세워졌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군 사대강령(四大綱領)

첫째, 사람이나 생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一曰(일왈), 不殺人(불살인) 不殺物(불살물)

둘째, 충과 효를 함께하여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二曰(이왈), 忠孝雙全(충효쌍전) 濟世安民(제세안민)

셋째, 왜와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 우리 도를 밝힌다
三曰(삼왈), 逐滅倭夷(축멸왜이) 澄淸聖道(징청성도)

넷째, 군대를 몰고 서울로 진격하여 권신과 귀족을 모두 없앤다
四曰(사왈), 驅兵入京(구병입경) 盡滅權貴(진멸권귀)
조선의 눈동자 - 곽재구 시 / 강형채 서

조선의 눈동자들은
황룡들에서 빛난다

그날, 우리들은
짚신 발과 죽창으로
오백 년 왕조의 부패와 치욕
맞닥뜨려 싸웠다

청죽으로 엮은
장태를 굴리며 또 굴리며
허울뿐인 왕조의 야포와 기관총을
한판 신명 나게 두들겨 부쉈다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은
오직 하나

복사꽃처럼
호박꽃처럼
착하고 순결한
우리 조선사람들의
사람다운 삶과 구들장 뜨거운 自由(자유)

아, 우리는
우리들의 살갗에 불어오는
한없이 달디 단 조선의 바람과
순금빛으로 빛나는 가을의 들과
그 어떤 외세나 사갈의 이름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을
한없이 파란 조선의 하늘의
참 주인이 되고자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와 손주가
한 상에서 김 나는 흰 쌀밥을 먹고
장관과 머슴과 작부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민들레와 파랑새가 우리들의 황토언덕을
순결한 노래로 천년만년 뒤덮는 꿈을 꾸었다

조선의 눈동자들은
황룡들에서 빛난다

그 모든 낡아빠진 것들과
그 모든 썩어빠진 것들과
그 모든 억압과 죽음의 이름들을 불태우며
조선의 눈동자들은 이 땅
이 산 언덕에서 뜨겁게 빛난다
장성 황룡전적지비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반외세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지향한 우리나라 근대사의 서막이요 민족 민주운동의 단서였다. 장성 황룡싸움은 바로 이 동학농민혁명에서 농민군이 대포등 신무기로 무장한 서울의 정예부대를 격파하고 전주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으며 왕의 군대를 무찔러 혁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엮어 만든 장태라는 신무기를 굴려 총알을 막으면서 관군에 육박하여 선봉장 이학승을 죽이고 대포 2문과 양총 100여정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농민대중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에서 가장 빛나는 이 싸움의 의미를 돼새기며 그 정신을 발전시키고 이를 영원히 기념하고자 우리 모두의 정성과 열의를 모아 이 탑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