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도 항일운동기념비 기념탑

4

주소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 1158
탐방로그
대모도를 가기 위해서 완도 여객터미널을 3번째 왔다. 어제 전화로 문의했을 때만 해도 바람이 강해서 배가 뜰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다행스럽게 출항이 가능했다. 대모도에서 탐방해야 할 곳은 항일운동기념비, 그리고 두 분의 애국지사 묘소이다.
주민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 작은 대모도에 6분의 애국지사가 나오게 된 원인도 알 수 있었다. 이분들은 모두 근처에 있는 소안도 소안보통학교에서 공부를 하신 지식인들이었고, 이 분들이 소안도 항일운동의 핵심 인물이 되셨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일본인과 친일파에게는 어떤 동정도 기대하지 말고, 그들과 교섭을 단절할것"을 결의 하였고, 4월에는 "일본 경찰당국과 일본인을 살육해서라도 대한국을 위해 활동하자"는 결연한 의지를 다짐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1925년 10월 21일까지 개량서당에서 매월 모임을 갖고 추진되었으니 이는 일제 필망론으로 가득찬 선열들의 애국정신과 전 도민의 일치단결을 보여주었다.
또한 1924년을 전후하여 모도노동회가 조직되어 노동운동을 펴는 한편 야학운동과 모도 서부 원숙지원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 노동회 집행위원장에 최정숙, 상무위원 장한준, 정두실, 조사위원 정원재, 고양부위원 김내숙 간부위원 천병섭, 실무부위원 문승묵 그리고 김민곤선생등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줄기찬 항일운동은 지도자들이 일경에 피체되어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법 장흥지청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던바 천병섭 장한준선생 징역 1년 정두실 천홍태선생 징역 10월 최창규 서재만선생 징역 6월의 처분을 받았다. 불행히도 천홍태선생은 복역 6월중 순국하였다. 작은 섬 모도에서 이러한 선열들의 줄기찬 항일운동의 함성이 드높았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열들의 이러한 위대한 투쟁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후손된 우리들은 이 작은 돌에 선열들의 얼을 새겨 여기 기념비를 세우고 그 고귀한 정신을 대대손손 전하려한다.
모도항일운동기념비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한 곳으로서 하늘,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해서 청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섬이며, 자연경관이 유별나게 아름다원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고싶은 섬'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 모도 항일운동기념비는 청산도 모도로 출신으로 1923년 9월 배달청년회를 조직하여 주민들에게 항일운동사상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맞서 조국수호에 일생을 바치신 독립유공자 6명(서재만, 정두실, 천병섭, 최창규, 천홍태, 장석칠)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완도군에서 건립하였다. 이곳을 찾아주신 분들께서는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주변청결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의 혼이 북소리를 통해 남해바다를 흔들어 울려 퍼지리라.
모도 항일운동 기념비
모도항일운동기념비
남해의 외딴섬 모도는 일제 식민지 암흑기에 항일운동의 횃불을 드높이 든 애국애족의 고장이다.
일찍이 선열들은 신학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1921년에 개량서당 모도학원을 세워 주민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1923년 9월 천병섭, 천홍태, 정두실, 서재만, 장한준, 최창규선생등이 주도하여 모도 배달청년회를 조직하고 소안배달청년회의 송내호,박열, 정남국, 박흥곤 선생등과 연대하여 국권회복을 열망하는 애국가와 혁명가를 합창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12월 해달청년회 책임자인 천병섭선생의 제의에 따라 "조선2천만 민중을 위한 독립만세"를 부르는 행사를 가졌다. 1925년 1월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