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동 묘

4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935
탐방로그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935에 있는 애국지사 이내한 선생과 이갑동 선생의 묘를 찾았다. 교회 묘소로 보이는 많은 묘소들이 있다. 같은 번지에 이내한 선생과 이갑동 선생의 묘소가 나란히 있었다. 비문을 읽어보니 두 분은 형제지간이셨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했다. 특히 당시의 상황등을 후손들에게 정확히 알릴려고 지역의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소상히 증언해 주시곤 하셨다. 그러나 김옥에서 얻은 해소가 지병으로 연결되어 늘 고생하셨으며 1969년 12월 19일 서거하시어 이곳에 안장 되셨으며, 그후 1992년 4월 13일 3.1독립유공자에 추서되셨다. 후손들은 어르신의 삶을 교훈삼고 다시 후세에 전하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2004년 4월 17일 후손 일동
애국지사 이갑동 선생의 묘
기미3.1의거 유공자 기독교성도 전주이공 갑동지묘
3.1독립유공자 이갑동님의 약력
족보명 이영재(전주이씨 효령대군 19대손)
1895.10.19 ~ 1969.12.19
공은 1895년 10월 19일 경기도 양주군 외북면 송촌리(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서 부친 이원섭옹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시고 근면 검소하셨던 공께서는 1919년 3월 1일 경성에서 발발한 만세사건이 2주 뒤인 3월 15일 이곳 용진(송촌리)까지 전달되었고 뜻을 같이 한 동리의 청장년들은 총동원되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드높이 외치면서 진중리, 조안리, 봉안, 팔당을 거쳐 덕소면사무소와 헌병분견소 주위를 돌며 만세시위를 감행하던 중 경성에서 출동한 헌병과 충돌하여 강제해산 되었다. 공은 다음날 용진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던 중 연행 구속되어 보안법위반으로 같은 해 4월 24일 지역 8월의 실형이 언도 되었다. 공은 재판관앞에서 증언시 "내 나라를 내가 찾겠다고 한것이 무슨 죄가 되는"라고 당당함을 보이셨다고 한다. 따라서 그 형량의 억울함을 상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0일 및 7월 11일 에 각각 원심대로 판결함으로서 친형님이신 이내안님을 비롯한 총 17인의 지사들께서 미결통산 12개월 이상의 옥고를 치루게 되었다. 공은 출옥한 후에도 국내외의 항일 운동에 참여함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도 선구자의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