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158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영암군 3.1운동기념비 건립취지문
지난 65년전 3.1운동당시 우리 영암에서도 고 조극환 선생(주도 지도자)을 비롯한 25인 의사들께서 일제의 총검 하에서도 국권의 회복과 민족자결의 대의을 위하여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불렀고 이분들의 뒤륽 따른 수천 애국군민들의 함성은 영읍과 구림을 비롯하여 전군을 진동케 하였으니 이 영암청년들의 쾌거야말로 월출산도 우쭐하고 덕진강도 끓었어라. 그러나 이 장거에 앞장섰던 25인 의사들께서는 그후 일경에 피검되어 갖은 악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최종 복역하였으나 이제는 다 고인이 되시니 이 의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길이 후세에 전승하여 다시는 이 땅에 국치의 수회가 없게하고 국민주체의식을 뿌리깊게 한다는 것을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이분들의 위업이 사료불명으로 묻혀있어서 "영암에서도 3.1운동이 있었더냐"고 반문하는 지방적으로 수치스러운때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일제시대의 재판판결문이 발견되어 그 당시의 경위가 소상히 밝혀지게 되억으므로 만시지탄은 있으나 가신님들의 그 거룩하신 애국애족의 얼을 영세불말 기리고져 전체애국군민의 성의있는 적극적인 참여로 이곳 유서 어린 땅에 "영암3.1운동기념비"를 건립한다.
지난 65년전 3.1운동당시 우리 영암에서도 고 조극환 선생(주도 지도자)을 비롯한 25인 의사들께서 일제의 총검 하에서도 국권의 회복과 민족자결의 대의을 위하여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불렀고 이분들의 뒤륽 따른 수천 애국군민들의 함성은 영읍과 구림을 비롯하여 전군을 진동케 하였으니 이 영암청년들의 쾌거야말로 월출산도 우쭐하고 덕진강도 끓었어라. 그러나 이 장거에 앞장섰던 25인 의사들께서는 그후 일경에 피검되어 갖은 악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최종 복역하였으나 이제는 다 고인이 되시니 이 의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길이 후세에 전승하여 다시는 이 땅에 국치의 수회가 없게하고 국민주체의식을 뿌리깊게 한다는 것을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이분들의 위업이 사료불명으로 묻혀있어서 "영암에서도 3.1운동이 있었더냐"고 반문하는 지방적으로 수치스러운때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일제시대의 재판판결문이 발견되어 그 당시의 경위가 소상히 밝혀지게 되억으므로 만시지탄은 있으나 가신님들의 그 거룩하신 애국애족의 얼을 영세불말 기리고져 전체애국군민의 성의있는 적극적인 참여로 이곳 유서 어린 땅에 "영암3.1운동기념비"를 건립한다.
영암 3.1운동 기념비
비문
경술국치후 우리국토는 일본군국주의자에게 강점되어 기미년 3.1운동이 궐기되기까지 10년간 이 땅에는 무단정치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가혹한 식민지학정이 수행되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족생존마저 위압을 느껴 조국강토는 기식이 암암하였을때 이 고장 청년지사 조극환선생을 비롯한 25인 의사께서는 일제헌병과 경찰의 총검이 삼엄함에도 적수공권으로 생사를 초극하고 오직 국권의 회복과 민족자결의 대의를 위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고 그 뒤를 따른 수천 민중의 함성소리는 영암읍은 시장의 거리에서 구림은 보통학교에서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그후 의사들께서는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악형과 수모를 겪으시고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과 대구복심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받고 복역하셨으나 이제는 다 고인이 되어 영원히 지하에 잠드셨다. 아아! 그분들은 국가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해있던 위기에 이를 장구하기위하여 민중의 선각자로서 신명을 홍모에 붙이고 선봉에 섰던 것이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최후의 1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운 선구자로서의 기개는 만대에 찬연히 빛날것이요 이 고장의 영원한 자랑이라고 하겠다. 오늘 이곳 유서의 땅에 동아일보사와 영암군 3.1운동기념비건립위원회가 공동으로 이 비를 세워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 옛날 이 고장 청년들이었던 의사들의 영화같은 기개를 후인들에게 길이 전승하여 귀감이 되게하고 이 선열들의 유덕을 만대에 숭앙코자 이 비를 세운다.
경술국치후 우리국토는 일본군국주의자에게 강점되어 기미년 3.1운동이 궐기되기까지 10년간 이 땅에는 무단정치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가혹한 식민지학정이 수행되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족생존마저 위압을 느껴 조국강토는 기식이 암암하였을때 이 고장 청년지사 조극환선생을 비롯한 25인 의사께서는 일제헌병과 경찰의 총검이 삼엄함에도 적수공권으로 생사를 초극하고 오직 국권의 회복과 민족자결의 대의를 위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고 그 뒤를 따른 수천 민중의 함성소리는 영암읍은 시장의 거리에서 구림은 보통학교에서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그후 의사들께서는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악형과 수모를 겪으시고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과 대구복심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받고 복역하셨으나 이제는 다 고인이 되어 영원히 지하에 잠드셨다. 아아! 그분들은 국가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해있던 위기에 이를 장구하기위하여 민중의 선각자로서 신명을 홍모에 붙이고 선봉에 섰던 것이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최후의 1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운 선구자로서의 기개는 만대에 찬연히 빛날것이요 이 고장의 영원한 자랑이라고 하겠다. 오늘 이곳 유서의 땅에 동아일보사와 영암군 3.1운동기념비건립위원회가 공동으로 이 비를 세워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 옛날 이 고장 청년들이었던 의사들의 영화같은 기개를 후인들에게 길이 전승하여 귀감이 되게하고 이 선열들의 유덕을 만대에 숭앙코자 이 비를 세운다.
의사
조극환 최민섭 박규상 김민규 최기준 김재홍 정학순 조병식 김영언 김상학 박판종 김봉근 유인봉 이종구 나효균 이기봉 천병권 진봉재 채동팔 박종연 김학용 정상조 조희도 박성집 박흔홍
조극환 최민섭 박규상 김민규 최기준 김재홍 정학순 조병식 김영언 김상학 박판종 김봉근 유인봉 이종구 나효균 이기봉 천병권 진봉재 채동팔 박종연 김학용 정상조 조희도 박성집 박흔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