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봉덕리 24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공은 조선 갑을의 현벌인 안동권씨 시조 고려 개국공신 태사 휘 행의 36세손으로 자는 태화: 훈장증에는 대화로 됨) 휘는 병안 호는 남강임8 1871년 2월 18일 순천시 승주읍 봉덕리 서평마을에서 태어나셨다. 공의 11대조 선균관진사 남포 휘 분은 당시의 극심한 당쟁으로 그의 선고 호조판서 휘 재재의 파작 유배 재등용 등을 겪으면서 가문의 영욕이 무상함에 벼슬을 등지고 낙남 순천에 입향 쌍암면(지금의 승주읍) 유치마을에 시거후 곧 이곳 서평마을을 개기 자작일촌하였다. 누전하여 공의 대인 한말에 이르러 바다 건너 왜구가 호시탐탐 이나라 침범을 노리더니 급기야는 국모를 시해하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서슴치 않으먀 경향각지에서 수많은 애국의병들이 격발분기하였으니 공 역시 이곳 수천을 거점으로 봉기한 강진원(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 추서)의병장 휘하의 군자금 조달 막료인 권덕윤 종숙과 더불어 전재산을 담보로 군자금 조달은 물론 수많은 격전지에 자진출진 많은 전공을 세우겼다. 그러나 공이 순천거점 의병진의 실질적 자금조달책이라는 사실을 감지한 왜 관헌들의 끈질긴 추적핍박에 노심초사하시던 공의 선고 휘 치택은 1908년 8월 10일 안타깝게도 천수를 다 하지 못하고 타계하시고 공 마저 왜의 토벌대에 피체 압송중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극형에 처해질것이 분명한바 이에 필사적 탈출을 도모하였으나 애석하게도 현장에서 순국하시니 그떄가 1909년 음 5월 2일이요 향년 39세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0년 마침내 이 나라는 일제에 강점 당하고 말았으니 오호라! 수 많은 애국선열들의 한 맺힌 넋을 그 무었으로 위로 할것이며 더구나 전재산을 군자금으로 다 바쳐버림으로서 온가족의 끼니마저 어렵게 되었을뿐만이 아니라 왜의 무서운 감시까지 받아가면서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유족들의 그 참상을 어찌 다 형언하리요. 그런 상화에서도 공의 미망인 밀양손씨 맹화는 당시 겨우 열살 내외의 어린 5남매를 거느리고 순국선열의 부인답게 의연하게 수절하며 사시다가 58세에 한많은 생을 마치혔다. 공의 순국기록은 사손의 끈질긴 추적끝에 기적적으로 발굴 늦게나마 그 높고 거룩한 큰 뜻이 높이
평가되었으니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면서 국가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수록되었으며 이어서 손씨부인은 2005년 주민들의 발천으로 순천향교와 성균관에서 열부로 포상되었고 또한 2008년에는 순국선열 생가복원사업계획에 의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후원하에 1967년 호남고속도로공사로 인하여 완전 철거된 생가중 그 일부나마 이처럼 복원되었음에 순국하신 선열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오며 아울러 이에 공의 고귀한 순국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또 계승발전케 하고자 우리 모두의 뜻을 모아 공의 서거 100주기를 마지하여 이비를 세운다.
순국선열 권병안 선생 생가
관리번호 55-1-41 / 국가보훈처지정현충시설
이곳은 권병안 선열의 태생지로서 그 생가는 1967년 호남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완전 철거된 이후 2009년 순국 100주기를 맞아 접도구역을 제외한 잔여대지에 그 생가 일부만을 복원하였으니 자세한 내용은 앞의 생가복원기를 가름한다.
관리자 사손 준표
관리번호 55-1-41 / 국가보훈처지정현충시설
이곳은 권병안 선열의 태생지로서 그 생가는 1967년 호남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완전 철거된 이후 2009년 순국 100주기를 맞아 접도구역을 제외한 잔여대지에 그 생가 일부만을 복원하였으니 자세한 내용은 앞의 생가복원기를 가름한다.
관리자 사손 준표
독립운동가 마을 / 권병안(權柄顔) 1871~1909 순천 승주 봉덕 249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으로 군대까지 해산달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권병안은 무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의병활동 중 1909년 전남 순천군 쌍암면 서평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이 표지판을 세웁니다.
2019. 11. 순천시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으로 군대까지 해산달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권병안은 무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의병활동 중 1909년 전남 순천군 쌍암면 서평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이 표지판을 세웁니다.
2019. 11. 순천시
독립운동가 마을 / 권병안(權柄顔) 1871~1909 순천 승주 봉덕 249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으로 군대까지 해산달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권병안은 무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의병활동 중 1909년 전남 순천군 쌍암면 서평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이 표지판을 세웁니다.
2019. 11. 순천시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으로 군대까지 해산달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권병안은 무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의병활동 중 1909년 전남 순천군 쌍암면 서평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이 표지판을 세웁니다.
2019. 11. 순천시
권대화 선생 집은 순천시 승주읍 봉덕리 249에 있다.
순국선열 권병안선생 생가 복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