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산112
- 탐방로그
-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산112에 위치한 임병국 기적비를 찾았다. 해당 사적 옆에는 김도규 기적비도 함께 위치해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義兵將 任公 秉國 紀績碑(의병장 임공 병국 기적비)
좌우익 부장 임병국 事行略(사행략)
공의 휜는 민호요 자는 병국 호는 만오 본관은 장흥이며 시조 태자태박공의
...중략...
병국은 태어나면서 부터 자질이 특출해서 성품이 정직하고 완력이 강건했으며 총명하고 영민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지도 않았다. 그는 독서를 즐기고 인륜을 좋아하셨으며 기품이 높고 담약이 있어 사소한 일에 얽
공의 휜는 민호요 자는 병국 호는 만오 본관은 장흥이며 시조 태자태박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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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국은 태어나면서 부터 자질이 특출해서 성품이 정직하고 완력이 강건했으며 총명하고 영민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지도 않았다. 그는 독서를 즐기고 인륜을 좋아하셨으며 기품이 높고 담약이 있어 사소한 일에 얽
매이지 않았다. 항상 명예와 절조을 마음에 간직하고 집안 살림에는 힘쓰지 않았다. 그 재능은 군사에 관한 일에도 능숙했다. 그는 한말 항일 전후 기 옛날 이름난 장군들이 위급한 전투에 기묘한 방책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일들을 예기했다. 또한 오늘에 와서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는 가산이나 국가가 망하게 될 징조라고 한탄하며 울분을 토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1900년 전후 의사 안규홍이 의병을 일으킬 때 병국이 모집에 응하여 나가니 담산은 기뻐하여 그를 좌우익 부장으로 삼았다. 병국은 방략을 세우고 위험한 국면을 안전하게 이끌었다. 또한 좋은 결단이 되도록 도모하고 자문하여 충고하니 담산은 그의 智謨(지모)를 인정하고 항상 받아들였다. 파청진산의 대첩 송곡과 葛峙(갈치)의 노획 복내시장의 전투는 모두 병국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시천서 헌병대에 중과부족으로 체포되어 광주재판소로 이송되어 구금되었다. 왜적과 괴수는 갖은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고 협박했었다. 병국은 죽음을 맹세하고 항거하면서 굽히지 않고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병국은 종손이란 이유로 사방에서 지인과 백성들의 호소가 끊임없이 이어지니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석방해 주었다. 병국은 자기의 삶을 죽음보다 못하게 생각하여 항상 치욕스럽게 여기고 단산과 죽음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병국은 국위를 선양치 못함을 계탄스럽게 여기며 초야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무꾼 행세를 하며 끝내 세
상에 출현치 않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공론이 그를 훌륭하게 생각했다. 나 태면은 친구의 사이로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여기에 그의 사적을 대략 쓰고 삼가 후대에 역사를 서술하는 군자가 판단하여 채택하시기를 기다리며 끝말은 如一(여일) 첨언하면 재판소 가기 전에도 고흥과 장흥 등지로 작전을 다니면서 不顧家事(불고가사)하고 자손의 교육도 친구로서 챙겨주지 못했음을 무척이나 안쓰럽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계사년 납월 중휴(1953) 진원 박태면 찬 유족대표 원모 근수
민호(병국) 출신지 묘지 수훈 유족안내표 / 관리번호 / 관리자 보성군수
1977년 건국포장 753 대통령,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691 대통령,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제10-18227 대통령
보훈번호 17-001029 원모(孫)
애국지사 생 1882년 6월 1일, 졸 1957년 5월 20일 / 배위고창평 생 11888년 2월 21일, 졸 1966년 11월 7일
1977년 건국포장 753 대통령,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691 대통령,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제10-18227 대통령
보훈번호 17-001029 원모(孫)
애국지사 생 1882년 6월 1일, 졸 1957년 5월 20일 / 배위고창평 생 11888년 2월 21일, 졸 1966년 11월 7일
충청남도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합폄
출생지 전남 보성군 율어면 율어리 206번지 / 기적비 건립소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산 112번지
출생지 전남 보성군 율어면 율어리 206번지 / 기적비 건립소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산 112번지
義兵將 任公 秉國 紀績碑(의병장 임공 병국 기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