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 무안의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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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 산4-1(190-4)
탐방로그
3.1독립운동 무안의적비는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 산 4-1 남산공원 내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3.1운동 그로부터 10년 1929년 11월 3일에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 독립운동은 백의민족의 끈질긴 반항이며 3.1정신의 계승입니다. 일제의 탄압은 더 한층 가혹하여 수 많은 애국학생들이 옥중 고통 받았음은 또 하나 민족수난사의 일면인 바 몽난의 최태주 씨와 장석진 씨 현경의 김남철 씨는 그 대표적 인물이고 해제의 김종성 씨는 동년 9월에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다가 옥고를 당하는 등 향토의 3.1 기풍을 면면히 전승하여 이 나라 광복의 씨알이 되었으니 국권이 회복된 오늘 향리에 생을 누린 우리에게는 이 모두가 귀감이 됩니다. 나라를 잃고 보니 고을(읍)조차 빼앗겼던 이 무안에 환국과 더불어 새마을이 밝아오니 내 고장 3.1운동 상기하고 24인 추모하며 민족정기 앙양하여 군민총화의 상징으로 남산 백제지에 기념비 건립이 숙원이더니 지난 4월 유지들로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임원의 정성 어린 노력에 따라 군내 유지와 각지 향우들은 물심양면으로 협찬을 해주시니 성스러운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광복 30주년 기념일인 오늘을 기해 이 비가 의의 깊게 세워짐을 우리 다 함께 기뻐하면서 건비에 공이 많으신 제현의 방명을 새겨 기념코저합니다.
3.1독립운동 무안의적비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물 제53-1-3호]

관리자 : 무안군수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 산 4-1 남산공원 내

이 비는 무안 출신 김한근과 유지 10여 명이 장날에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여 1975년 8월에 건립하였다.
무안의 독립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한근이 독립만세소식을 전하면서 추진되었고, 지역유지 수십 명은 무안읍 장날인 3월 19일 새벽 읍내 각처에 독립선언서와 경고문을 붙여 친일파의 반성, 자숙과 민중들의 궐기를 촉구하였다. 이날 읍내에 모인 수백의 군중들은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고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밤 10시경까지 만세운동시위를 계속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고 중심인물 24명을 포함한 57명이 체포되었다.
무안군에서는 그날의 의의를 되새기고자 매년 3.1절 기념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3.1독립운동 무안의적비
3.1독립운동 무안의적비
인생은 백 년이요 민족은 불멸이라. 삼천리 강토를 일제에 빼앗긴 지 10년 겨레는 참다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섰으니 이것이 민족사에 영원히 빛을 남긴 기미년 3.1독립운동이다. 그때 여기 무안에도 민족의 피는 끓어나니 김한근 선생은 서울에서 재학 중인 학생의 몸으로 민족의 사자 되어 고향에 내려와 토사지 자택에서 동지들과 모의 끝에 3월 9일 남산 깊은 골짜기에 집합 작세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정오를 기해 태극기 손에 손에 대한독립 소리높이 외치면서 성세당당 성안으로 행진 시위하니 수만 군중이 합세하여 항일의 기백은 중천 하였도다. 약한 자여 그의 이름은 망국인이던가. 맨주먹으로 싸운 골안 사람들은 일경 수비 하의 총칼에 못 이겨 하염없이 좌절되고 선봉 주동 24인은 끝내 검거되어 고문 악형과 투옥 복역으로 광복 투쟁의 역군이 되었으니 자고로 국난에 한 몸 바침은 민족의 도리련만 만인이 다 그렇지 못하거늘 우리 어찌 향토 애국 의사의 위국 용명을 몰?할리 있으리오. 역사는 흘러가도 그 땅은 그 자리라. 여기 향민들의 뜻을 모아 의적비를 세우나니 길이 후세에 귀감이 될지어다.
인생은 백 년이요 민족은 불멸이라. 삼천리 강토를 일제에 빼앗긴 지 10년 겨레는 참다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섰으니 이것이 민족사에 영원히 빛을 남긴 기미년 3.1독립운동이다. 그때 여기 무안에도 민족의 피는 끓어나니 김한근 선생은 서울에서 재학 중인 학생의 몸으로 민족의 사자 되어 고향에 내려와 토사지 자택에서 동지들과 모의 끝에 3월 9일 남산 깊은 골짜기에 집합 작세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정오를 기해 태극기 손에 손에 대한독립 소리높이 외치면서 성세당당 성안으로 행진 시위하니 수만 군중이 합세하여 항일의 기백은 중천 하였도다. 약한 자여 그의 이름은 망국인이던가. 맨주먹으로 싸운 골안 사람들은 일경 수비 하의 총칼에 못 이겨 하염없이 좌절되고 선봉 주동 24인은 끝내 검거되어 고문 악형과 투옥 복역으로 광복 투쟁의 역군이 되었으니 자고로 국난에 한 몸 바침은 민족의 도리련만 만인이 다 그렇지 못하거늘 우리 어찌 향토 애국 의사의 위국 용명을 몰?할리 있으리오. 역사는 흘러가도 그 땅은 그 자리라. 여기 향민들의 뜻을 모아 의적비를 세우나니 길이 후세에 귀감이 될지어다.
24의사 방명록

김영우(김한근) 상사리
김순기 성내리
정신섭 성동리
박선규 성내리
김득근 성동리
양화순 성동리
박상규 성동리
정치언 성남리
정순선 성동리
이동천 성내리
정순재 성동리
정규태 성남리
안판신 교촌리
정태연 성동리
안동선 교촌리
정순홍 성동리
윤호영 성동리
정규수 성내리
정윤조 성내리
박용규 성내리
정규식 성내리
정순정 성내리
정인철 성남리
강지석 만창리
3.1운동 그로부터 10년 1929년 11월 3일에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 독립운동은 백의민족의 끈질긴 반항이며 3.1정신의 계승입니다. 일제의 탄압은 더 한층 가혹하여 수 많은 애국학생들이 옥중 고통 받았음은 또 하나 민족수난사의 일면인 바 몽난의 최태주 씨와 장석진 씨 현경의 김남철 씨는 그 대표적 인물이고 해제의 김종성 씨는 동년 9월에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다가 옥고를 당하는 등 향토의 3.1 기풍을 면면히 전승하여 이 나라 광복의 씨알이 되었으니 국권이 회복된 오늘 향리에 생을 누린 우리에게는 이 모두가 귀감이 됩니다. 나라를 잃고 보니 고을(읍)조차 빼앗겼던 이 무안에 환국과 더불어 새마을이 밝아오니 내 고장 3.1운동 상기하고 24인 추모하며 민족정기 앙양하여 군민총화의 상징으로 남산 백제지에 기념비 건립이 숙원이더니 지난 4월 유지들로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임원의 정성 어린 노력에 따라 군내 유지와 각지 향우들은 물심양면으로 협찬을 해주시니 성스러운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광복 30주년 기념일인 오늘을 기해 이 비가 의의 깊게 세워짐을 우리 다 함께 기뻐하면서 건비에 공이 많으신 제현의 방명을 새겨 기념코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