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문 장군 일가(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4

주소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359-2
탐방로그
현창비는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359-2 차뫼마을 입구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현창비
불꽃처럼 산화한 동학농민혁명 지도가 김응문 형제들. 아! 동학농민혁명군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 무안 차뫼마을 옥녀봉 아래 터다. 갑오년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어 농민군을 이끌던 무안 동학 지도자 김응문 형제와 자제가 태어난 곳 그해 내내 백산으로 전주로 서울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렬하게 처형된 농민군의 원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다. 누구라도 나서야 한다! 나주 김씨 김응문(본명 김창구)은 무안 다산리에서 세세토록 명망 있는 유사(儒士) 출신이다. 무안향교의 직을 맡고 고을 일을 도맡았으나 부패 무능한 조선왕조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임진년 삼례집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농민들은 "오백 년 종사(宗社)가 장차 망하게 되었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효제충신(孝梯忠信)을 지금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충의(忠義)로운 선비들을 선발하여 함께 보국(輔國)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외쳤다.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다. 전봉준 대장은 3월 백산에서 "우리가 의(義)를 거하여 이에 이른 것은 그 본뜻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창생(蒼生)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기위해서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내자"고 선언했다. 여기에 배규인(배상옥) 김응문 등 무안 지도자들도 동참하였다. 무안 농민들이여! 농민혁명, 반침략 운동에 동참하라! 갑오년 4월 중순 영광 무안 일대에 주둔한 농민군들은 적을 대할 때 네 가지 약속과 열두 가지 계군호령(戒軍號令)을 만들어 생명을 중시하고 가난한 약자를 배려하고자 했다. 5월 청계면 청천재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을 이끌었다. 9월 중순 김응문 접주는 왜적 침략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는 다산리 집에 대장간을 설치하고 무기를 만들었다. 2차 봉기에는 무안지역 2천여 명 농민들도 흔쾌히 참여했다. 2차 봉기에는 무안지역 2천여 명 농민들도 흔쾌히 참여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안타깝게도 무안 농민군은 11월 말 나주 고막포 전투에서 패배했다. 김응문과 그 형제들도 체포되었다. 김응문 동생 김자문(덕구)은 12월 8일 아들 김여정(우신)은 9일 동생 김효문(영구)은 12일 재판도 없이 억울하게 무안 불우제 차밭머리에서 죽었다.
동학농민군은 희망대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갑오년에 못다 핀 꽃들의 산화를 기억하리라. 언젠가 민중이 해방되어 자유를 찾아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는 그날 무안 농민군 지도자와 농민군의 위대한 이름을 다시 호명하리라!
배규인 배규찬 송관호 갑기운 정경택 박연교 노영학 노윤하 박인화 송두옥 김행로 이민홍 임춘경 이동근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김문일 김종곤 박규상 박순서 박정환 박정환 윤문여 윤석호 장용진 정여삼 조덕근 최창현 최선현 최기현 한용준
배규인~김응문까지 15명 : 백산집회 참여자
김효문~한용준 등 17명 2차 봉기 이후 희생자 등 총 32명

서기 2022년 5월 4일

문학박사 왕현종 짓고
우공 박홍규 그림
후손 자암 장현 쓰다.
불꽃처럼 산화한 동학농민혁명 지도가 김응문 형제들. 아! 동학농민혁명군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 무안 차뫼마을 옥녀봉 아래 터다. 갑오년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어 농민군을 이끌던 무안 동학 지도자 김응문 형제와 자제가 태어난 곳 그해 내내 백산으로 전주로 서울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렬하게 처형된 농민군의 원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다. 누구라도 나서야 한다! 나주 김씨 김응문(본명 김창구)은 무안 다산리에서 세세토록 명망 있는 유사(儒士) 출신이다. 무안향교의 직을 맡고 고을 일을 도맡았으나 부패 무능한 조선왕조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임진년 삼례집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농민들은 "오백 년 종사(宗社)가 장차 망하게 되었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효제충신(孝梯忠信)을 지금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충의(忠義)로운 선비들을 선발하여 함께 보국(輔國)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외쳤다.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다. 전봉준 대장은 3월 백산에서 "우리가 의(義)를 거하여 이에 이른 것은 그 본뜻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창생(蒼生)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기위해서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내자"고 선언했다. 여기에 배규인(배상옥) 김응문 등 무안 지도자들도 동참하였다. 무안 농민들이여! 농민혁명, 반침략 운동에 동참하라! 갑오년 4월 중순 영광 무안 일대에 주둔한 농민군들은 적을 대할 때 네 가지 약속과 열두 가지 계군호령(戒軍號令)을 만들어 생명을 중시하고 가난한 약자를 배려하고자 했다. 5월 청계면 청천재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을 이끌었다. 9월 중순 김응문 접주는 왜적 침략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는 다산리 집에 대장간을 설치하고 무기를 만들었다. 2차 봉기에는 무안지역 2천여 명 농민들도 흔쾌히 참여했다. 2차 봉기에는 무안지역 2천여 명 농민들도 흔쾌히 참여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안타깝게도 무안 농민군은 11월 말 나주 고막포 전투에서 패배했다. 김응문과 그 형제들도 체포되었다. 김응문 동생 김자문(덕구)은 12월 8일 아들 김여정(우신)은 9일 동생 김효문(영구)은 12일 재판도 없이 억울하게 무안 불우제 차밭머리에서 죽었다.
동학농민군은 희망대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갑오년에 못다 핀 꽃들의 산화를 기억하리라. 언젠가 민중이 해방되어 자유를 찾아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는 그날 무안 농민군 지도자와 농민군의 위대한 이름을 다시 호명하리라!
배규인 배규찬 송관호 갑기운 정경택 박연교 노영학 노윤하 박인화 송두옥 김행로 이민홍 임춘경 이동근 김응문 김효문 김자문 김여정 김문일 김종곤 박규상 박순서 박정환 박정환 윤문여 윤석호 장용진 정여삼 조덕근 최창현 최선현 최기현 한용준
배규인~김응문까지 15명 : 백산집회 참여자
김효문~한용준 등 17명 2차 봉기 이후 희생자 등 총 32명

서기 2022년 5월 4일

문학박사 왕현종 짓고
우공 박홍규 그림
후손 자암 장현 쓰다.
조그마한 독 하나를 세우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하는 원동력이고 현재는 미래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밑거름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긴 세월을 잊고 살았습니다.
128년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들의 이름을 조그마한 독 하나에 새깁니다.
당신들이 염원했던 대동세상의 꿈을 우리들이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봉건세력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열강들의 침략야욕에
분연히 맞서 싸운
당신들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들이 꿈꿔온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을
우리가 꼭 이루겠습니다.

서기 2022년 5월 4일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응문 일가 현창비 건립 추진위원회
조그마한 독 하나를 세우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하는 원동력이고 현재는 미래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밑거름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긴 세월을 잊고 살았습니다.
128년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들의 이름을 조그마한 독 하나에 새깁니다.
당신들이 염원했던 대동세상의 꿈을 우리들이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봉건세력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열강들의 침략야욕에
분연히 맞서 싸운
당신들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들이 꿈꿔온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을
우리가 꼭 이루겠습니다.

서기 2022년 5월 4일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응문 일가 현창비 건립 추진위원회
현창비는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359-2 차뫼마을 입구에 있다.